"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지난 8일 낮 중국 후베이성(湖北省) 후앙메이현(黃梅縣)에서 북쪽으로 28㎞가량 떨어진 사조정각선사(四祖正覺禪寺) 전법동(傳法洞).한국 스님과 불교 신자 등 70여명이 반야심경을 독송한 뒤 철산 스님(대승사 선원장)의 손뼉소리를 죽비 삼아 일제히 참선에 들었다.

한국 사찰의 마루 법당과 달리 맨바닥에 1인용 받침대를 깔고 절을 하는 입식(立式)구조여서 가부좌를 틀기가 불편했지만 전법동엔 미동도 없이 침묵만 가득했다.

사조사 전법동은 중국 선불교의 초조(初祖)인 달마로부터 시작해 2조 혜가,3조 승찬의 뒤를 이은 4조 도신(道信)이 5조 홍인(弘忍)에게 법을 전한 곳.두 사람은 첫 만남의 인연부터 기이했다.

'전등록'에 따르면 어느날 도신이 황매현으로 가다 일곱살 쯤 된 아이에게 성(姓)을 물었다.

아이는 "성은 있으나 흔치 않다"며 "부처의 성품인 불성(佛性)"이라고 답했다.

도신이 "네 성은 없느냐"고 재차 묻자 아이는 "성품은 공하다"고 대답했다.

도신은 이 아이를 데려다 출가시키고 법을 전했으니 그가 바로 홍인이다.

중국인 관람객들이 신기한 듯 쳐다보는 가운데 참선에 든 지 20분쯤 지났을까.

다시 '손뼉 죽비'와 함께 참선이 끝나자 한국의 대표적 선사인 고우 스님(70)은 "우리가 참선을 하는 것은 손바닥과 손등이 다 손인 것처럼 본질과 형상이 둘이면서 하나임을 깨닫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달마 이후 역대 조사와 선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형상 뒤에 있는 본질을 봄으로써 번뇌를 뿌리째 뽑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날 전법동에서 참선한 이들은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신도회(회장 김의정) 부설 불교인재개발원이 '한·중 교류의 해'를 맞아 마련한 중국 선종사찰 순례자들.이번 순례 프로그램은 허베이성(河北省) 스좌징(石家莊)의 임제선사 주석처인 임제사와 조주선사 주석처인 백림선사를 시작으로 달마 대사와 혜가의 수행처였던 허난성(河南省) 덩펑의 소림사와 달마동굴 및 이조암,3조 승찬의 수행처였던 안후이성(安徽省) 잠산현의 천주산 산곡사(삼조사),후베이성의 사조사와 오조사,육조혜능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광둥성(廣東省)의 남화선사와 대감사,광효사 등을 두루 답사하는 강행군이다.

사조사에 이어 찾아간 후앙메이현의 오조사는 황매산 서쪽에 주석했던 '서산(西山) 4조' 도신과 달리 '동산(東山) 5조'로 불렸던 홍인의 수행처다.

뿐만 아니라 이곳은 육조 혜능이 행자 신분으로 법을 전해받은 현장이다.

대웅전 뒤편 비로전 옆의 오조 진신전에는 홍인의 육신불이 모셔져 있고,그 오른편에는 혜능이 행자 신분으로 8개월간 방아를 찧던 자리에 육조전이 세워져 있다.

육조전 안에는 혜능의 등신상과 함께 혜능이 찧던 디딜방아가 재현돼 있다.

등신상 위에는 '보리본무수(菩提本無樹) 명경역비대(明鏡亦非臺)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하처야진애(何處惹塵埃)'라는 게송이 걸려있다.

행자 혜능이 스승 홍인의 수제자였던 신수의 게송을 한마디로 제압해버린 그 유명한 게송이다.

일자무식의 나뭇꾼 출신인 혜능은 신수가 지은 '신시보리수(身是菩提樹·몸은 보리수요) 심여명경대(心如明鏡臺·마음은 밝은 거울이라) 시시근불식(時時勤拂拭·수시로 털고 닦아서) 물사야진애(勿使惹塵埃·먼지가 끼이지 않게 하라)'라는 게송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깨달음은 본래 나무가 아니요,맑은 거울 또한 받침대가 없다.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어디에 먼지가 앉겠는가'라는 것이다.

홍인은 그날 밤 혜능을 불러 가사와 발우를 법의 증표로 전하고 남쪽으로 몸을 피한 다음 훗날 널리 법을 펴도록 했다.

혜능의 그릇도 그릇이지만,그 그릇의 크기를 단번에 알아보고 법을 전한 홍인의 혁신적 전법이 놀랍다.

행자 혜능이 법의 신표를 훔쳐간 것으로 안 신수의 제자들이 뒤쫓자 혜능은 남쪽으로 몸을 피한다.

그로부터 15년 후 혜능은 광둥성 광저우의 광효사에 나타나 펄럭이는 깃발을 두고 '바람이 움직인다,깃발이 움직인다'며 논쟁하던 스님들을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라는 말로 잠재운다.

이를 지켜본 인종 법사는 혜능이 오조의 법을 이었음을 알고 그를 삭발시킨 뒤 스승의 예를 갖춘다.

광효사 대웅전 뒤편에 당시 혜능이 삭발한 머리카락을 모신 탑과 1500여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보리수가 당시의 역사를 증언한다.

혜능은 광효사를 거쳐 광저우 북쪽 남화선사(南華禪寺)에서 30여년 간 선법을 펼치고 대감사에서 '육조단경'을 설한 다음 말년을 고향인 광저우 남서쪽 신싱(新興)의 국은사에서 보내다 입적했다.

자신의 입적 예고에 제자들이 슬피 울자 혜능은 "울지말라.너희들이 내가 가는 곳을 안다면 울지 않을 것이다"고 했다고 한다.

생사가 둘이 아님을 깨달은 이의 가르침이다.

남화선사 '조전(祖殿)'에 모신 혜능의 육신상은 과연 죽음의 고통도 삶의 애착도 끊어버린듯 여여한 모습이다.

선의 역사를 설명하며 순례단과 함께 한 고우 스님은 "모든 존재는 연기에 의해 잠시 있는 형상일 뿐 본질이 공(空)이라는 사실을 알면 삶과 죽음 또한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광저우(중국)=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