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남미 지역에 좌파 성향의 정부가 잇따라 들어서고 기업 및 자원에 대한 국유화 바람이 불면서 우리 기업들의 투자 심리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

반면 에너지 가격 상승과 중동 지역의 정세 불안으로 '에너지 수입원' 다각화를 위한 중남미 진출의 필요성은 한층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경제신문은 지난 2일 본사 17층 회의실에서 최종화 주브라질 대사,신숭철 주베네수엘라 대사,한영희 주페루(볼리비아 겸임) 대사,김경석 주에콰도르 대사 등 중남미 지역 공관장들을 초청,'중남미 좌파 정부와 에너지산업 진출 방안'을 주제로 좌담회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중남미 신정부들은 교조적 좌파가 아닌 경제 성장과 사회 통합을 목표로 한 실용적 좌파"라고 강조한 뒤 "최근 이들 지역의 정치가 안정을 이루면서 새로운 투자 기회가 마련되고 있어 우리 기업들이 적극 진출할 필요가 있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사회=고광철 국제부장


▲사회=지난해 중남미에서 아르헨티나를 빼고 열두 번의 선거가 있었습니다.

좌파 성향 정부의 출범이 두드러져 보이는데요,한국 기업들에 미칠 영향이 궁금합니다.

△신숭철 주베네수엘라 대사=베네수엘라는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일관되게 에너지 국유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모든 에너지 개발 프로젝트에서 정부가 지분의 51% 이상을 확보하고 경영 주도권을 가지려 합니다.

오나도 광구에 투자했던 한국석유공사는 지분이 14%에서 5.64%로 줄었고 세금과 로열티 부담은 33%에서 38%로 늘었죠.대신 계약 기간을 17년에서 26년으로 연장받았습니다.

△한영희 주페루·볼리비아 대사=볼리비아에서 동원산업이 팔마 유전과 팔마델 오라트리오 가스전 개발권을 100%씩 갖고 있는데 볼리비아 정부가 국유화를 추진하고 있어 재계약을 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정책 변화가 예상되는 만큼 앞으로는 진출 단계에서부터 단독으로 하지 않고 현지 자본과 함께 추진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최종화 주브라질 대사=자원 국유화는 중남미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브라질에서는 석유와 천연가스는 국영 페트로브라스가,광물자원은 CVRD가 알짜 자원을 다 확보하고 있습니다.

SK와 LG가 자원 탐사 활동을 하고 있지만 전부 지분 참여 형태입니다.

▲사회=현지 정부와 기업들 간의 법적 분쟁도 생길 것 같은데요.

우리 기업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합니까.

△신 대사=외국 메이저 기업들의 반발 때문에 중남미 국유화 조치가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소개된 측면이 있습니다.

외국 메이저 기업 중에 법적으로 해결하겠다고 하는 곳은 있지만 철수를 준비하는 곳은 없습니다.

제도가 바뀌더라도 석유사업에서는 아직 굉장한 이익을 남기고 있다는 증거겠지요.

△최 대사=베네수엘라의 조치는 몰수라기보다 외국 메이저들이 과도하게 가졌던 것을 환수해 적정하게 배분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이들 정부가 외국 메이저를 내보내기도 불가능합니다.

채굴 기술이 점점 고도화하고 있어 외국 기술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김경석 에콰도르 대사=에콰도르에서는 경제학자 출신인 라파엘 꼬레아가 반미 민족주의 성향을 내세우고 에너지는 국가 주권이라고 강조했지만 실제 취임 후에는 대대적인 국유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해외 자본에 의지해 석유를 개발하겠다는 게 신정부의 방침입니다.

에콰도르의 하루 원유 생산량이 55만배럴에 그치고 있는데 투자를 늘리면 3년 안에 100만배럴로 늘릴 수 있지만 부채가 많아 국가 재정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기 때문이죠.특히 정유 시설이 하루 10만배럴의 처리 능력밖에 없어 산유국인 데도 정유를 수입합니다.

에콰도르 정부는 정유소를 짓기 위해 한국 자본의 투자와 진출을 강력히 희망하고 있습니다.

SK가 최근 관심을 보여 현장 조사를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과거 정국 불안 때문에 조심스러워하는 것 같습니다.

▲사회=중남미에 좌파 정부가 잇따라 들어선다고 해서 외국 시각에서 우려가 많았는데 경제 성장률은 오히려 좋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1990년대 성장률 제로에 머무는 등 경제가 전체적으로 굉장히 부진했던 것과 대조적입니다.

좌파 정권의 출범을 민주화의 진전으로 보는 평가도 있던데요.

△최 대사=국가마다 편차가 있으나 멕시코,브라질,아르헨티나 등 주요국들이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브라질은 7~8년 새 인플레가 연 3%에 머무는 등 안정기조가 정착됐고 작년에 좀 부진했으나 5% 내외의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자원이 워낙 많기 때문에 사회적 혼란이 재발하지 않으면 성장 잠재력이 크다고 봅니다.

개방 기조와 경제 안정화 노력을 집중적으로 해온 결과죠.태생적 좌파였던 룰라 정부는 출범 이후 중도 온건과 실용주의 노선을 표방했습니다.

노조를 대변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대변하는 대통령으로서 국민 통합에 주력했죠.안정적인 지도자상을 보여줬습니다.

2기 선거에서 중산층과 백인 지배계층을 가리지 않고 지역 편차도 없이 고른 지지를 확보해 압도적 표차로 승리했습니다.

△한 대사=현재 중남미 좌파의 특징은 시장경제의 틀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복지에 더 신경쓰겠다는 것입니다.

공산주의 냉전시대 좌파와는 스펙트럼이 완전히 다릅니다.

페루의 경우도 현재 최우선 과제가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발효시키는 것일 만큼 경제 개방에 적극적입니다.

페루-미국 FTA는 페루 의회에서 비준이 끝났고 미국의 비준만 남아 있습니다.

알란 가르시아 대통령은 1985~1990년에도 집권했는데 경제가 굉장히 닫혀 있었습니다. 분배 위주의 정책을 펴 인플레이션이 1만%에 달했고 치안도 어려웠습니다.

아직도 중도 좌파를 내걸고 있으나 내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본인이 1기 집권은 실패했다고 인정했고 두 번 다시 실패한 대통령으로 남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김 대사=중남미 공통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에콰도르는 인구 10%가 부의 80% 이상을 갖고 있어 부의 편중 현상이 심각합니다.

정권 기반이 약한 약점도 있지만 경제 운용을 잘 해서 국가를 완전히 바꿔보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강합니다.

다만 해외 투자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경험과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기회를 발굴해야 합니다.

▲사회=우리 기업들이 잘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고 집중 진출할 분야는 어떤 게 있습니까.

△신 대사=중남미에 좌파가 득세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어 기업들의 투자 심리가 위축돼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유가 상승으로 정부에 상당한 석유 자본이 축적됐고 많은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고 있어 우리 기업들의 사업 기회는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 기업들이 우선 진출할 분야는 석유 광물 등 원자재 분야이고 두 번째는 IT 분야입니다.

캐리비안 지역 국가들의 모임인 '캐리콤(CARICOM)'은 한국의 e거버먼트 경험을 전수받는 데 적극적입니다.

△최 대사=브라질은 철광석 가공,철강,농산물 가공,유전공학 등에 경쟁력이 있습니다.

특히 바이오 에너지와 에탄올 기술에 상당한 투자를 해서 기술 축적이 돼 있고 자원도 갖고 있죠.우리는 입질만 하고 있는데 더 늦기 전에 협력 위치를 확보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브라질 입장에서는 한국의 반도체,전자,통신,조선,자동차 부문과 협력하고 싶어합니다.

△한 대사=우리와 페루의 교역액이 5억달러에서 지난해 10억달러로 급속히 늘었습니다.

중남미 경제가 안정적인 성장세를 타고 있는 만큼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이 중남미 진출을 공세적으로 확대하고 있는 만큼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갖고 진출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 대사=서울이 최근 버스교통카드 시스템을 에콰도르에 수출했습니다.

1500만달러짜리인데 다른 노선까지 입찰하면 1억달러까지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에콰도르 대통령이 한국 경제를 경이롭게 생각하고 특히 장하준 박사(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의 저서들을 감명깊게 읽었다고 합니다.

한국을 경제 모델로 삼겠다는 생각이 강하죠.에콰도르는 현재 20억달러 규모의 ITT광구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데 아마존의 환경 문제가 걸려 있어 첨단 기술을 가진 외국 기업의 도움을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 기업들이 가진 첨단 기술을 부각시켜야 합니다.

교민들이 정확한 정보 없이 개입하는 경우가 있는데 대사관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주면 좋겠습니다.

정리=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