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成鳳 <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화성에서 온 남자,금성에서 온 여자'란 책이 한때 인기였다. 남자는 속성상 결과지향적이고 여자는 관계지향적이어서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세상 살아가는데 두 가지 모두 필요하지만 서로 생각하고 일하는 방식이 다르니 서로를 잘 이해하라는 것이다.

참여정부의 공공혁신은 금성에서 왔다는 느낌이다. 결과나 성과보다는 관계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스스로도 자신들 공공혁신의 특징을 소프트웨어적인 변화라고 밝히고 있다. 행정자치부가 2006년 발간한 '국민과 함께 한 정부혁신 3년'이란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의 정부에서는 민영화,인력감축,자산감축 등 하드웨어적인 개혁을 중점적으로 추진한 반면,참여정부에서는 이를 일하는 방식,공공서비스 개선 등 소프트웨어적인 변화로 바꿨다고 말하고 있다.

참여정부 공공혁신의 특징은 공공기관의 존립과 특성을 일단 인정하는 전제 위에서 이의 운영과 경영을 개선한다는 데 있다. 무엇보다도 두드러진 것은 다양한 이해당사자와의 관계를 중시한다는 점이다. 고객만족도를 높이며 임직원에 대해서는 권한을 하부로 위임하고 경영정보를 공유하며 노조와는 윈-윈을 위한 자율적인 협의를 하도록 강조한다. 시민단체나 환경단체와 특별한 문제가 나타나지 않도록 평소에 원만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라고 권면(勸勉)한다. 나아가 분배문제나 양극화 문제에도 도움이 되기 위해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장애인이나 이재민에 대해 요금을 할인하거나 요금미납에 따른 서비스 중단을 유예하도록 한다.

참여정부의 공공혁신이 구체적인 경영혁신의 방법과 수단을 제시하고 자의든 타의든 고객을 비롯한 여러 이해(利害) 당사자들과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며 커뮤니케이션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또한 여러 이해집단들과 시민단체,환경단체 등에 대해서도 상시적인 채널을 유지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공공기관을 그대로 두고 그 효율성을 개선하는 것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하드웨어적인 긴장감 없이는 공공기관의 자율적 노력이 쉽게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감사원이 2005년 7월 발표한 공기업 경영혁신 추진실태에 대한 감사결과에 따르면 자율개혁 체제로 전환된 이후 상당수 공기업에서 임금을 과다하게 인상하고,불필요한 조직과 인력을 운영하는 등 방만한 경영행태가 재현(再現)됐다. 참여정부에서 인원을 줄이면서 구조조정을 단행한 공공기관이 단 하나도 없었다는 것은 그동안 공공혁신이 얼마나 평안한(?) 환경 하에서 진행됐는지를 짐작케 한다. 만약 정부가 강력한 하드웨어적인 공공혁신을 추진했다면 이 같은 공공기관의 모럴해저드나 이완된 기관운영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공공기관의 근본적인 기능 재조정과 이에 따른 구조조정,경쟁도입, 그리고 민영화 가능성을 차단한 채 모럴해저드나 방만한 운영만을 문제삼는 것은 핵심을 비껴가는 것이다.

공공혁신이 고객이나 이해당사자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관계지향적 접근을 취하는 동안 민간부문의 혁신은 고통스럽게 이뤄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민간기업들이 규모를 줄이거나 문을 닫고 있으며 많은 인력이 정리되고 있다. 공공부문이 독점적 사업이나 각종 부과금 또는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고통 없는 경영혁신을 추진할 동안 민간부문은 경기부진으로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공공부문이 관계지향적인 '금성형'혁신만을 추구할 동안 민간부문에서는 '금성형'혁신과 더불어 성과지향적이며 고통스러운 '화성형'혁신을 동반하고 있다. 정부도 이제는 하드웨어적인 혁신에 예외가 돼서는 안된다. 성과와 고통이 전제되지 않는 '금성'에서 온 혁신은 화장술(化粧術)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정부는 민간의 혁신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시대착오적인 각종 규제로 이를 훼방 놓아서는 안될 것이다. 며칠 전 '대한민국 혁신포럼 2007'에서 기업 등 민간이 전권을 갖는 경쟁력 강화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적자생존의 정글에서 살아가고 있는 민간에서 혁신의 주도권을 가져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