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예고편만 되풀이할 것 같았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집단탈당드라마가 5일부터 이틀에 걸쳐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막을 올리고 내렸다.

`금주 중 결행하겠다'며 `예고탈당'을 언급해온 탈당파 의원들이 5일 수차례의 소그룹 모임을 가지며 거사일을 숙의한 끝에 6일 오전 탈당파 의원 전체 회동을 갖고 23명의 명단을 전격 발표한 것.

탈당파 의원들의 숨가뿐 움직임은 5일부터 감지됐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6일 오찬을 앞두고 `대통령 탈당' 변수 등으로 흔들리던가 싶던 탈당파가 공세적으로 내부단속과 세(勢) 확산에 들어갔다.

김한길, 강봉균(康奉均) 의원 등 탈당파 핵심 의원 8명은 마포의 한 호텔에서 조찬모임을 갖고 "더 이상 탈당을 미룰 수 없다"며 탈당 결행에 교감을 나눴고, 충청.인천지역 의원모임, 통합신당파 5개 그룹 간사모임이 연쇄적으로 이뤄지면서 6일 `거사'에 참여할 의원들의 윤곽이 대충 드러났다.

김한길 조일현(曺馹鉉) 최용규(崔龍圭) 의원 등 전직 원내대표단, 강봉균(康奉均) 변재일(卞在一) 우제창(禹濟昌) 의원 등 중도실용그룹, 주승용(朱昇鎔) 양형일(梁亨一) 박상돈(朴商敦) 서재관(徐載寬) 의원 등 충청.호남의원들이 탈당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것.

이후 5일 오후로 접어들면서 국회 의원회관 4층은 집단탈당의 지휘부로 변모했다.

탈당파 핵심 의원들은 의원회관 4층에 위치한 김한길 의원실과 변재일 의원실을 오가며 막판 상황점검에 나섰고, 탈당과 잔류의 경계선상에 있던 의원들을 상대로 집중설득에 나섰다.

한마디로 별도의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도록 20명 이상의 탈당동지를 만드는 작업에 돌입한 것.

김한길, 강봉균, 양형일, 주승용 의원 등 탈당파 핵심의원들은 "탈당후 통합신당 추진이 살길이다", "시간을 끌면 탈당명분이 없다"며 이종걸(李鍾杰) 조배숙(趙培淑) 김낙순(金洛淳) 의원들에게 결단을 주문했고, 이들 의원들도 탈당대열에 합류하는 길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우윤근(禹潤根) 의원 등 일부 의원은 "탈당은 하겠지만 결행시기는 위임해 달라"고 주문함에 따라 우 의원은 탈당 명단에는 이름을 올리되 금주말께 개별 탈당을 하기로 했고, 김근태(金槿泰) 의장계인 유선호(柳宣浩) 의원도 고심을 거듭하다 개별 탈당으로 선회했다.

또 김근태 의장과 정동영(鄭東泳) 전 의장계 핵심 의원들도 탈당파 의원들에게 밤늦게까지 전화를 걸어 "전대까지 기다려보자. 탈당시기를 늦춰달라"며 막판 설득작업에 나서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탈당 결행을 약속한 사람이 20명을 넘어서게 되자 탈당파는 5일 밤 11시 시내 모 호텔에서 전체 회합을 갖고 탈당선언문을 점검하고, 향후 계획을 숙의하려 했으나 언론에 장소가 노출되자 전체 회합이 무산되기도 했다.

호텔 앞에 대기한 취재진을 목격한 일부 탈당의원들은 차를 돌려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고, 먼저 약속장소에 도착했던 의원들도 서로 긴밀한 연락을 취해 결국 6일 오전 7시로 전체모임을 미루는 해프닝이 빚어진 것.

하지만 숨가쁜 하루를 보낸 뒤 6일 국회 건교위원장실에 모인 탈당의원들은 전날 언론노출을 꺼렸던 것과는 달리 결단을 내린 만큼 차라리 홀가분하다는 표정이었다.

이들은 2시간여에 걸쳐 차분하게 탈당선언문을 다듬고 중도개혁 통합신당추진, 주말 워크숍 개최 일정 등에 합의한 뒤 9시30분 국회 기자회견장으로 향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집단 탈당에 대한 우리당내 부정적인 여론을 감안한 듯 "국민통합신당의 밀알이 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참회와 반성의 길이라고 생각했다"며 허리를 90도로 숙여 두번씩이나 참회의 인사를 하는 등 탈당의 진정성을 보여주고자 애쓰는 모습도 보였다.

전병헌(田炳憲) 의원은 기자회견 직후 "우리의 목표는 탈당이 아니라 통합신당으로 가려는 것이다. 확고부동하게 중도개혁 신당에 모두 동의했다. 우리는 범민주평화개혁세력이 모이는 터전"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정윤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