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도매價 한국의 20%..가격경쟁력 갖춰

지난해 말 '뼛조각 반송'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사실상 중단된 뒤 쇠고기가 자유무역협정(FTA)을 비롯한 한.미 통상 관계의 향방을 결정할 열쇠로 지목되고 있다.

미국 행정부 관계자와 상.하원 의원들은 최근 우리나라 한미FTA 특위 의원단을 만난 자리에서 쇠고기 등 농산물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FTA 협상의 진전이 어렵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박홍수 농림부장관 등 한국측이 'FTA 협상과 쇠고기 검역 및 수입 위생조건 협의는 별개'라는 입장을 여러 차례 강조했음에도, 이처럼 미국이 FTA 전체와 쇠고기를 연계시켜 강하게 시장 개방 압력을 가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 생산.도매가격 한국의 5분의 1

15일 농림부와 한국육류유통수출입협회, 미국농무부 등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미국 네브래스카주 평균 초이스급(최상급) 쇠고기의 생산자 판매 가격은 100㎏당 174달러, 도매가격은 322달러로 조사됐다.

이에 비해 지난해말 기준 우리나라 쇠고기의 산지 가격과 도매가격은 각각 100㎏ 75만8천원, 146만5천원 수준. 지난 13일 원.달러 환율 940원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806달러, 1천559달러로 각각 미국의 4.6배, 4.8배에 달한다.

이 정도 가격 차이라면 현재 우리나라가 수입 쇠고기에 물리는 40%의 관세가 유지된다 해도 충분한 가격 경쟁력을 갖춘 셈이다.

미국의 대규모 기업식 사육과 저렴한 땅 값 등을 고려할 때 한국 축산물이 가격면에서 미국과 경쟁하기는 힘든 구조다.

◇ 한국은 '잃어버린' 3대 쇠고기 수출 시장

미국산 쇠고기는 이미 이같은 강점을 앞세워 지난 2003년 12월 광우병이 발생하기 직전까지 한국 수입 쇠고기 시장을 지배한 바 있다.

국립수의검역과학원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3년 한 해 우리나라에 수입된 쇠고기 가운데 75%(금액 기준)는 LA갈비를 비롯한 미국산이었다.

미국 입장에서도 한국은 2000년대 들어 2003년까지 줄곧 일본, 멕시코에 이어 부동의 3대 쇠고기 수출 시장으로, 그 비중이 절대적이었다.

2003년의 경우 미국이 전 세계에 수출한 127만t의 쇠고기 가운데 한국이 수입한 물량은 약 25만t, 전체의 20%에 달했다.

그러나 광우병 발생으로 수입이 중단된 이후 우리나라 수입 시장에서 미국의 빈 자리는 고스란히 호주의 차지가 됐다.

작년 한해 우리나라가 수입한 쇠고기 가운데 호주산의 비중은 79%(금액 기준)로 2003년 당시 미국의 비중과 비슷한 수준이다.

◇ 본격 개방되면 국내 축산업 타격 불가피

따라서 미국으로서는 본격적인 수출 재개를 통해 호주에 빼앗긴 3대 쇠고기 수출 시장을 되찾는데 혈안일 수 밖에 없다.

2003년 127만t에 달했던 미국의 쇠고기 총 수출량은 광우병 발생으로 일본과 한국 등이 수입 제재 조치를 취하면서 2004년과 2005년 각각 32만t, 47만t까지 곤두박질쳤다.

지난해 멕시코 및 캐나다로의 수출이 늘면서 54만t으로 급증했으나 2003년과 비교하면 여전히 절반도 회복하지 못한 상태다.

미국 육류수출업자들은 한국의 까다로운 검역만 없다면 한국 시장을 놓고 호주산과 경쟁해 충분히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특히 풀을 먹여 기르는 호주산보다 곡물을 먹인 자신들의 고기가 더 맛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필립 셍 미국육류수출협회(USMEF) 사장은 최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산 쇠고기는 방목되다 도축되기 직전 곡물사료를 줌으로써 다른 국가 쇠고기에서는 찾기 힘든,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 연하고 고소한 맛이 있다"며 은근히 호주산을 의식한 '맛 자랑'을 펼쳤다.

뼛조각 문제가 한미 양국의 기술협의 과정에서 원만히 해결돼 값이 싸고,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맛까지 좋은 미국산 쇠고기가 다시 대거 밀려들 경우 국내 축산업은 크게 위축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FTA 협상에서 관세까지 없어지거나 크게 떨어지면 국내 축산물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박홍수 농림부 장관도 지난 12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축산업 생산이 연 11조원에 달해 이미 경제적 측면에서는 쌀보다 더 중요한 위치에 있다"며 "이번 FTA협상에서 쇠고기 등 축산물 개방과 관련, 저율관세 할당물량(TRQ), 관세 감축 기간 및 폭 등 모든 카드를 꺼낼 것"이라며 쇠고기 시장 전면 개방(관세 철폐)을 막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른바 '뼛조각' 문제에 대해서는 "무역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건강과 관련된 위생문제"라고 강조하며 FTA 협상에 휘밀려 쉽게 검역 기준을 완화해 줄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기자 shk99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