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로 등 5천여명 행진 강행…27명 연행
도심 주요 간선로 교통 `마비'…상가 `개점휴업'

한미 FTA(Free Trade Agreement.자유무역협정)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 주최 3차 궐기대회가 경찰의 금지 통고에도 불구하고 6일 오후 강행됐다.

노동자와 농민, 대학생 등 5천여명(경찰 추산)은 서울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궐기대회에 참석한 뒤 서울 도심 곳곳에서 도로를 점거하고 게릴라식 선전전을 벌였다.

이로 인해 퇴근길 교통이 한때 마비됐고 을지로 등 일부 지역 상가는 손님이 없어 `개점휴업' 상태였다.

◇ 마로니에공원 집회 = 민주노동당은 오후 1시30분께부터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공원과 인근 도로 6차로 중 4차로를 차지한 채 `비정규직 악법(惡法) 날치기 통과 규탄집회'를 개최했다.

문성현 대표와 권영길ㆍ천영세ㆍ노회찬ㆍ심상정ㆍ현애자 등 당 소속 국회의원 5명, 통일연대 한상렬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 집회는 정상적인 신고 절차를 거치긴 했지만 실제로는 FTA 저지 궐기대회의 사전집회 성격으로 진행됐다.

이에 따라 민노당이 범국본 주최 불법 집회 장소를 대신 확보해 준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김선동 민노당 사무총장은 "노무현 정권은 경제발전을 얘기하면서 IMF 환란 때보다 10배 이상의 경제재앙을 몰고 올 수 있는 FTA 협상을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실업대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은 `비정규직 확산법'을 절대 인정할 수 없다"며 " 노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해야 하고 국회는 재개정 작업을 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민노당 집회가 종료된 직후인 오후 3시46분께 범국본측은 당초 걸려 있던 `비정규직 악법 날치기 통과 규탄집회' 현수막을 내리고 `한미FTA 반대 3차 총궐기대회' 현수막으로 교체한 뒤 곧바로 "한미FTA 저지 범국민 궐기대회 본집회에 들어간다"고 공지한 후 집회를 계속했다.

범국본 소속 11개 부문 대표들은 공동으로 낭독한 결의문에서 "정부는 지난 11월22일 1차 궐기대회에서 터져나온 전국 각지의 정당한 민심을 `기획폭력'으로 몰아붙이면서 무더기 수배ㆍ연행ㆍ구속을 자행했다"며 "정부당국은 헌법을 유린하는 비이성적 탄압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오후 4시20분께 `광우병 미국 소' 모형을 불에 태우는 행사를 끝으로 본집회를 마무리하고 지하철을 타고 수십명 단위로 분산 이동했다.

◇ 본집회 후 도심 게릴라 시위 = 이날 집회 참가자들 대부분인 4천500여명은 오후 4시 40분께부터 동대문 두산타워 앞, 충무로 대한극장 앞, 지하철 4호선 회현역 근처 등 3곳에 분산, 선전전을 벌였다.

오후 4시45분께부터 시위대가 모여들기 시작한 동대문 두산타워 근처에서는 2천500명이 현수막을 들고 "FTA 협상 즉각 중단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미리 준비한 유인물을 행인들에게 나눠 주면서 차로를 점거한 채 을지로 방향으로 행진했다.

지하철 4호선 회현역 입구에서는 시위대 1천여명이 전철역 구내에 대기하고 있다 오후 4시55분께 일제히 뛰어나와 도로를 점거한 뒤 대한극장 앞에 모여 있던 시위대 700여명과 함께 세를 규합했다.

행진 시위대 규모는 10여분 뒤 동대문 두타에서 출발한 집회 참가자 등이 추가로 을지로 3가에서 합류하면서 4천500여명으로 늘어났다.

시위대는 3개 차로를 점거하고 행진하다가 을지로 2가에 경찰이 설치한 차벽에 가로막히자 인근 이면도로 등을 통해 명동 밀리오레 앞 등 퇴계로 일대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대학생 등 일부 시위 참가자들은 골목과 이면도로를 질주하며 경찰의 제지를 따돌리기도 했다.

이들은 명동 밀리오레 앞에서 퇴계로 6개 차로 전체를 막고 시위를 벌이며 서울역 방향 진출을 시도했으나 경찰에 가로막히자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으며 일부는 플라스틱 생수병 등을 던지기도 했다.

모 신문사 기자 3명과 모 케이블 채널 기자 1명이 시위대로부터 뺨을 맞는 등 가벼운 폭행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시위대 중 일부는 오후 6시 30분께부터 해산하기 시작했으며 나머지 2천여명은 명동성당으로 이동, 오후 7시부터 촛불집회를 벌였다.

이 중 대학생 등 200여명은 오후 8시 23분께 연행자 석방을 요구하며 롯데백화점 앞 도로를 점거하고 연좌농성을 벌였다.

근처 교통이 마비되자 경찰이 10분 후 이들을 인도로 밀어내 차량 소통을 재개했으나 이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지면서 명동 입구∼명동성당 앞 보도가 한때 아수라장이 됐으며 노모(53)씨가 쓰러져 서울백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남은 600명의 시위대는 경찰과 대치하다가 오후 10시께 해산했다.

경찰은 이날 시위 참가자 27명을 퇴계로와 명동ㆍ을지로 등에서 연행해 서울 시내 경찰서들에 분산, 조사를 벌였다.

이날 경찰은 서울시내에 175개 중대를 배치,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으나 심각한 부상자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 교통체증 극심ㆍ상가 `개점휴업' = 시위대가 퇴근 시간대에 거의 전 차로를 점거하고 곳곳에서 시위를 벌임에 따라 충무로와 퇴계로, 을지로 등 일대의 교통은 극심한 체증 상태에 빠졌다.

을지로, 퇴계로 일대의 상점 상당수가 손님이 없어 `개점휴업' 상태로 오후 한나절을 보냈으며 일부 가게는 아예 셔터를 내려 버리고 영업을 종료하기도 했다.

을지로 3가에서 타일가게를 운영하는 신동웅(64)씨는 이날 오후 6시께 근처 도로를 점거한 시위대를 답답한 표정으로 지켜보며 "시위가 있는 날이면 손님 발길이 뚝 끊기는데 오늘도 하루 종일 손님이 단 한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701번 버스를 운행하는 오모(49)씨는 을지로 외환은행 앞에서 버스가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자 "평상시에는 1시간 30분이면 노선 전체를 한 바퀴 도는데 운행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2시간이나 됐다"고 불만을 토로한 후 "제발 시위를 하더라도 남들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후 6시 15분께 버스를 기다리던 신모(27.여.은행원)씨는 "사무실이 밀집돼 있고 차가 많이 막히는 곳인데 여기서 꼭 불법집회를 해야 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 경찰 "채증분석 거쳐 엄정 사법처리" = 경찰은 이날 현장에서 연행된 시위 참가자 27명을 상대로 폭력 사용 및 불법 차로 점거 혐의가 있는지를 조사한 뒤 사법처리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또 경찰은 이날 전의경을 폭행하는 등 극렬 시위를 한 참가자와 불법집회를 주도한 범국본 집행부 등에 대한 채증사진 분석을 실시, 위법행위 혐의가 인정될 경우 사법처리하는 등 강력 대응키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큰 불상사 없이 끝났다고 해서 사법처리가 흐지부지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명백히 불법을 자행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추적해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범국본 관계자는 "올해 안으로는 대규모 집회가 예정돼 있지 않으며 내년 초 제주도에서 열릴 제6차 한미FTA 협상에 맞춰 투쟁 계획을 짜겠다"며 "단 매주 수요일 보신각에서 하는 집회는 계속할 것이고 연행자 석방을 촉구하는 경찰서 항의방문도 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성혜미 장재은 차대운 기자 noanoa@yna.co.krjangje@yna.co.krsetuz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