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사가 이미 선정된 재건축 단지에서 시공권 쟁탈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개발부담금 등 각종 규제로 재건축사업이 위축되면서 시장 규모가 크게 줄어들자 초기 재건축단지들을 중심으로 이미 시공권을 선점한 업체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 공사를 따내려는 후발업체들 간 수주전이 가열되는 추세다.

이 같은 수주전 과열로 조합원들 간 갈등이 불거져 재건축사업이 계획보다 지연되는 등 부작용이 빚어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 잠원동 대림아파트에서는 기존 시공사였던 A사와 시공권을 빼앗으려는 2∼3개 건설업체 간의 수주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단지는 이미 2002년 정식 계약을 맺지 않았을 뿐 사실상 A사를 시공사로 내정했으나,이후 공사비 협의 등이 잘 진전되지 않아 지난 9월 열린 관리처분총회에서는 정식으로 시공사를 결정하지 않고 서초구에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했다.

이에 대해 서초구청은 "시공사가 선정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인가를 내줄 수 없다"며 보류 판정을 내려 현재 시공사 선정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 단지는 이후 5차례의 현장설명회를 가졌으나 아직 시공사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A사와 이를 뺏으려는 경쟁업체들의 물밑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A사 관계자는 "이미 다른 업체가 몇 년 동안 공들인 단지의 시공권을 노리는 것은 업계 관행에 크게 어긋나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경쟁업체 관계자들은 "주민들의 뜻을 반영하는 총회에서 A사가 배제된 만큼 선점권을 인정할 수 없다"며 맞서고 있다.

수주전 끝에 재건축 시공사가 전격 교체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지난 4월 서초구 반포동 미주아파트가 대표적이다.

이 단지는 인근의 재건축 대단지인 반포 주공2단지를 수주한 C사가 사실상 시공사 역할을 하며 사업을 추진해왔으나,지난 4월 시공권을 D사에 넘겼다.

조합원들의 추가 부담금 등이 시공사 교체에 큰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단지 인근 우리부동산 관계자는 "기존 28평형을 35평형으로 넓히는 데 조합원들이 내야 하는 부담금에 대해 양사가 제시한 금액에 차이가 많이 났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서초구 반포동 삼호가든1·2차는 기존 E사와 F사 컨소시엄이 그대로 공사를 맡기로 결론이 났지만,조합 측이 시공사를 다른 업체로 바꾸기 위해 입찰공고를 내고 현장설명회까지 열기도 했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재건축 시공권 쟁탈전은 현재의 힘든 수주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재건축 개발부담금제 등의 규제로 사업성이 악화된 초기 재건축 단지들이 사업 추진을 속속 중단해 공사를 따낼 곳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황용천 해밀컨설팅 사장은 "많은 건설사들이 다른 업체들의 사정을 봐줄 수 없는 정도로 생존을 건 수주전에 내몰리고 있다"며 "앞으로 재건축사업에서 소송이나 흑색선전 등 과열 양상이 빚어질 것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