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골퍼들이 필드에서 공이 안 맞을 때 대는 핑계는 108가지나 된다고 한다. "전날밤 과음을 해서" "날씨가 안 좋아서" "요즘 연습을 못해서" 등등. 이렇게 핑계를 대다 대다가 그래도 안 맞으면 마지막으로 대는 핑계는 이렇다고 한다. "오늘 이상하게 안 맞네."

참여정부가 임기 내내 집값을 잡겠다며 부동산 대책을 시리즈로 발표하고 있는 걸 보면 '주말골퍼의 108가지 핑계'라는 우스갯소리가 생각난다.

참여정부는 집권 초기 집값이 뛰자 '불로소득을 노린 투기세력 탓'이라고 단정했다. 집값을 안정시키려면 투기꾼들을 때려 잡아야 한다며 세금폭탄을 쏟아부었다. 비싼 집을 가진 사람엔 징벌적 종합부동산세를 매기고,집을 두 채 이상 가진 사람에겐 양도소득세를 확 올렸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투기세력이) 집을 팔지 않고 들고 있으면 종합부동산세,팔면 양도세를 매기겠다"고 엄포를 놨다. "어디 종부세 한번 내보라"며 세금폭탄의 위력을 자신했다. 집값이 올라 앉아서 돈을 번 사람들에게 세금 때린다니 상당수 국민들은 박수를 쳤다. 이런 분위기 속에 단기적 투기수요 억제도 필요하지만 중장기 집값 안정을 위해 주택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시장원리적 '공급확대론'은 투기세력의 논리로 매도돼 설 자리가 없었다.

그러나 8·31대책의 효과가 몇개월 발휘되는가 싶더니 올 봄 집값은 이내 다시 오르고 말았다. 8·31대책으로 투기는 끝났고,10·29 이전 수준으로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고 장담했던 정부로선 난감했을 것이다.

이 때 정부가 댄 핑계가 주택담보대출이었다. 세금을 아무리 올려도 은행들이 싼 이자로 주택담보대출을 마구 해주니 집값이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게 3·30대책이다. 주택담보대출을 억제하기 위해 말도 어려운 총부채상환비율(DTI)이란 규제를 도입하고,집을 살 땐 돈을 어디서 끌어 왔는지 시·군·구에 일일이 신고토록 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집값은 잠시 주춤하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서울과 수도권 집값은 또 미친듯이 오르고 있다. 세금에 대출억제까지 동원해 봤지만 집값이 잡히지 않자 정부는 또 다른 핑계를 찾았다. 이번엔 아파트 분양가가 지목됐다. 요즘 집값 폭등은 판교와 파주신도시,은평 뉴타운 등의 분양가가 지나치게 높아 주변 집값을 부추긴 게 원인이라며,이젠 분양가를 끌어내리는 대책을 내놓겠다고 한다.

그 와중에 정부는 틈틈이 단골 메뉴인 '언론 때문에' '국민들이 잘 몰라서' 등의 핑계를 잊지 않았다. 의아스러운 건 정부가 그렇게 온갖 핑계를 다 갖다 대면서도 그간의 정책이 실패한 탓이란 건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장원리를 무시하고 억누르기만 했던 주택수요가 수급불안 심리로 인해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집값이 오른 것이란 시장의 분석을 정부는 애써 외면한다. 이런 지적엔 귀를 틀어 막고 자꾸 다른 데서 새로운 핑계거리를 찾다보니 결국 효과도 없는 땜질식 대책만 반복되는 셈이다.

궁금한 게 있다. 만약 다음주에 발표할 아파트 분양가 인하 등 대책으로도 집값이 잡히지 않는다면 정부는 또 무슨 핑계를 댈까. 혹시 참여정부가 마지막으로 '이상하게 집값이 안잡힌다'는 말만은 꺼내지 않길 바란다.

차병석 경제부 차장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