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칼라 범죄 엄단' 공언 실효성 논란

범죄 피의자의 무죄 석방을 미끼로 8천만원을 받은 국정원 직원에 대해 벌금형이 선고돼 화이트칼라 범죄를 엄단하겠다는 이용훈 대법원장의 공언이 일선 법원에서는 제대로 먹혀들지 않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문용선 부장판사)는 25일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국정원 직원 윤모씨에게 벌금 1천만원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가정보원 소속 공무원인 피고인이 형사사건에 관해 청탁한다는 명목으로 8천만원이라는 많은 돈을 받아 그 죄질이 좋지 않다"며 유죄 선고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인이 이 사건과 관련해 징계를 받았고 국정원 직원으로서 그동안 성실히 근무해 왔으며 피고인의 연령 등에 비추어 볼 때 공무원의 신분을 박탈하는 것은 다소 가혹한 것으로 보인다"며 벌금형을 선고했다.

국가공무원법상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없지만 윤씨는 이 형이 확정되면 공무원직은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법원 주변에서는 "수시로 철야근무를 하는 경찰관이 수백만원을 받았다는 이유로 해임된 전례에 비춰 상대적으로 고소득자인 국정원 직원이 거액을 받고도 벌금형을 선고받은 것은 너무 관대하다.

이 대법원장의 화이트칼라 범죄 엄단 공언은 일선 법원에서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이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문용선 부장판사는 "윤씨가 전문 브로커가 아니고 받은 돈을 되돌려준 데다 국정원 내부에서 공직자로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하면 공직 박탈은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어 벌금형을 선고했다"고 설명했다.

윤씨는 2003년 8월부터 주식투자 전문가인 김모씨와 여러 차례 금전관계를 해오면서 친분관계를 유지해오던 중 김씨가 올 1월 모 회사로부터 사기죄로 고소당해 검찰 조사를 받자, "검찰이나 법원에 청탁해 무혐의나 무죄를 보장해주겠다"며 8천만원을 받았다가 고소당했다.

한편 윤씨에게 돈을 준 김씨는 현재 사기죄로 구속 기소돼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종 기자 taejong75@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