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美熙 < 싸이더스FNH 대표 greenpapaya2000@hanmail.net >

내게는 17년 만난 친구 하나가 있다.

충무로 새내기 시절부터 고진감래(苦盡甘來)를 같이 겪은 친구다. 좋은 일보다는 억울한 일,속상한 일,가슴 아픈 일이 많았던 시절 밤늦도록 서로를 속상하게 만든 자(者)를 잘게잘게 씹어주고 속시원하게 내일을 맞게 해주던 친구다.

그러나 나보다 훨씬 능력이 뛰어난 내 친구는 언제나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 많은 사람들이 곁에 있었다. 때론 그 친구의 능력이 부럽기도 하고 질투하기도 했고 콤플렉스를 느끼기도 했다.

또 어떤 시기는 촘밀하게,어떤 시기는 서로 바쁘다는 핑계로 엉성하게 감정이 뒤섞여 씨실과 날실의 추억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늘 내게 최고의 친구로 존재했다. 그렇게 우리는 20대를, 30대를, 이제는 불혹(不惑)을 맞이했다.

최근 그가 아프다.

아주아주 아프다.

드라마나 영화에나 나오는 병이다.

남의 일인 듯하다.

내 친구와의 추억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그러면서 사람이란 참 간사한 존재임을 깨닫는다.

바쁘다는 핑계가 너무 미안하고, 친구의 힘든 여백 시간에 나의 부재(不在)가 더더욱 죄스럽고… 왜 미리 깨닫지 못하는 걸까? 왜 꼭 이런 일이 일어나야만 느끼는 걸까? 왜 항상 뒤늦은 후회를 할까? 왜 미리 행동에 못 옮기고 마음을 챙겨주지 못했을까?

생각해보니 최근 내 친구의 근황에 대한 자세한 사항도 모르는 것 같다.

그의 마음들이 무엇으로 좋아하고,무엇으로 싫어하는지,또 애인이 생겼는지 최근에 무엇으로 위안을 삼고 살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가장 친하다는 사람이 말이다. 미안하다,친구야… 항상 밝게 웃고, 항상 건강해 보이고,어떤 일 앞에서도 항상 씩씩한 모습을 보여준 너였기에 오래도록 그럴거라 생각한 친구의 우둔함을 용서해주길 바란다.

우린 아직 젊다고 생각했고, 아직 할 일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단다. 주변을 돌아보기엔 이르다고,그래서 앞만 보며 달려온 게 사실이지.

그런데 너로 인해 인생은 바다라는 걸 알았다. 아무리 예상하고 아무리 계산해도 헤아릴 수가 없구나.

어제 너의 병소식을 듣고 너무너무 미안해서… 그래도 또 너를 만나면 고작 "H야 가을햇살 죽인다,커피 마시자"라고 할 것이다.

"친구야,17년 동안 진심으로 고마웠고,사랑한다. 의치하는 그날까지 계속 사춘기스럽게 수다 떨고 분위기 잡고 그러자. 한가지 부탁. 힘들땐 힘들다고 해줘라. 파이팅!"

우리 주변에는 감사드려야 할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사랑한다고 말해야 할 시간들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