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동유럽의 사회구조는 서유럽보다 불안정했다.

새 농업기술과 사회조직 도입도 늦었다.

중세 말부터 상업도시가 번창한 서유럽과 달리 동유럽은 상업과 도시가 별로 발달하지 못해 인구학적 위기나 경기침체의 충격도 컸다.

도시가 취약했다는 것은 무제한적 소유권 개념이 정교한 로마법이나 시민권이 번성할 여지가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도시의 자치가 말살되어 귀족을 제어할 도시 부르주아도 성장하지 못했다.

절대왕정이 대개 서유럽의 군사적 압박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으므로 군사적 성격이 강했으며 군대조직은 더욱 확대되고 전문적이었다.

서유럽에서 절대왕정은 입헌주의로 접어들지만 동유럽의 권위주의적 절대국가에는 합의를 거치지 않은 징세,대외 전투만이 아니라 국내치안유지까지 맡는 상비군,왕의 자의적 외교수행 등 '전근대적' 특징이 1918년까지 존속했다.

17세기에 동유럽의 지배자들도 서유럽을 본받아 강력한 중앙집권적 절대국가를 세우고자 노력한다.

이 기초는 대체로 1400∼1650년에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16세기 독일은 300여개의 독립적 정치단위,즉 영방국가(領邦國家ㆍ중세 유럽에 국왕이 일정한 영역에서 단일한 지배권을 행사하던 나라)의 집합체였다.

이 안에 자유도시가 몇 개 포함되어 있었으나 도시의 정치적 의의는 부차적이었다.

영방군주는 중요한 국사를 결정할 때 영방의 신분제 의회(교회제후,세속제후,자유도시)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제약을 받았다.

본래 국왕에 대한 자금 협찬기관이던 신분제는 군주와 거의 동등한 권한을 가졌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하면서 새로운 이해관계가 끊임없이 발생함에 따라 군주를 제약하는 영방신분의 힘이 점차 약화되고 군주권이 강대해진다.

영방국가 단위로 절대왕정체제가 성립하는 시기는 대체로 30년전쟁 후였다.

중세 때 서유럽과 유사한 진로를 걷기도 했던 러시아는 외세 침입과 정복을 겪으며 서유럽과 아주 다른 차르독재체제를 창출했다.

옛 귀족이 약화되고 차르의 군대로서 충성을 맹세하는 신흥귀족이 등장했다.

농민 도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민을 토지나 토지귀족에 결박하고 귀족은 그 대가로 군사 의무를 졌다.

16세기에 러시아 영토팽창과정에서 직책에 따라 한시적으로 하사받는 토지와 세습귀족의 사유재산 간의 구분이 폐지되었고 모든 귀족은 토지를 받기 위해 차르에 봉사할 의무를 졌다.

도시인의 일,재산에 대한 보장은 없었다.

가장 부유한 상인조차 차르에 종속되고 왕실이 상업을 독점해 중산층 성장을 저해했다.

18세기 초 표트르대제 때 절대왕정이 등장하지만 역사적 배경이 다른 서유럽 절대왕정과는 대조된다.

동유럽 절대왕정의 부상과 함께 왕들은 어느 정도 프랑스 루이 14세의 영향을 받아 재능있는 예술가에게 왕의 권력과 위용을 찬양하도록 요구했다.

이는 건축,도시건설에서 두드러져 1700년 무렵부터 신민에게 군주의 강력함을 과시하려는 궁전건축이나 도시건설이 유행했다.

군사적 승리를 기리기 위한 오스트리아의 쇤브룬 궁전,독일 소공국의 수도 칼스루에,상트 페테르부르크 등이 대표적 예다.

표트르대제는 폴타바 전투(1709년)에서 승리한 후 '유럽을 내다보는 창'이 될 신도시를 건설하도록 명령했다.

그는 자신의 정치 이념이 건축에 반영된 근대적 도시를 원했다.

그에게 근대성이란 넓고,곧고,돌로 포장된 거리,통일된 형태로 늘어선 집,대형 공원,하수시설,석조 다리,가로등 등을 의미했다.

도시발달유형도 동유럽은 서유럽과 달랐다.

서유럽에서는 도시가 상업발달의 산물로 출발했으며 근대 초기에 국왕의 통제하에 행정도시로 확장되었다.

정치력과 도시성장이 연결되어 국민국가 형성과 더불어 수도가 급성장했다.

농촌경제의 잉여부족으로 상공업도시를 결여한 가운데 등장한 러시아의 행정도시는 서유럽형보다는 오히려 동양의 도시유형에 가깝다. 즉,인도나 중국은 일찍이 내륙에서 대규모 행정도시가 발달하는데 이들이 거꾸로 국가적 시장형성에 기여하기도 했다.

이렇듯 도시의 성장패턴과 중앙집권 간에는 상관관계가 있다.

독일은 수백개의 영방국가가 차츰 정비되면서 1871년에 통일을 이뤘고 히틀러 치하에서 일시적으로 중앙집권이 정점에 다다랐으나 역사적 유산 때문에 지방분권이 강하다.

한편 서유럽식 도시발달의 길을 걷다가 일약 연방국가가 된 미국은 뉴딜정책을 계기로 중앙정부의 영향력이 급속히 확대되지만 지방자치적 요소도 상당하다.

일본도 메이지 유신과 군국주의에도 살아남은 막부시대의 오랜 지방자치 경험이 있다.

즉 선진산업국의 지방분권은 역사적 산물이며 정부가 중앙집권을 시도해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기에 양존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고려 시대에 중앙집권이 마무리되고 효과적인 중앙정부가 정착되었다.

지방자치의 장단점을 떠나 위로부터 지방분권을 추진하는 일은 행정 효율 면에서 재고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지방자치를 육성한다면서 국토균형발전 운운하며 중앙정부를 더욱 키우는 것은 도대체 앞뒤가 맞지 않다.

서울대 경제학 dyang@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