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주택건설업체들이 신규 사업자금마저 제때 조달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은행 등 제1금융권이 대출 리스크 관리를 위해 프로젝트 파이낸싱(PF·개발사업자금)을 대폭 줄인 데다 최근 들어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 역시 돈줄을 꽁꽁 묶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분양률이 저조한 지방권이나 수익성 분석이 까다로운 상가 등은 사실상 자금줄이 막혀 있는 상황이어서 주택건설업체들의 자금난·경영난이 더욱 가중될 우려가 큰 실정이다.


○대출제한 피해 본사 옮기기도

아파트 등의 분양률이 현저히 떨어지는 지방권 사업의 PF대출 심사가 최근 들어 더욱 강화되면서 사업을 중도포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계약률이 10% 선을 밑돌면서 미분양 아파트가 쌓여 있는 대구 등 영남권이 가장 심각하다.

최근 2~3년간 1만여가구 이상이 집중 공급된 대구 수성구만 해도 신규 PF대출이 사실상 '올스톱'되면서 3~4개 아파트 건설사업이 무기 연기됐다.

잇따른 택지개발로 신규분양이 쏟아지고 있는 부산도 마찬가지다.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Y사의 경우 조만간 2차 분양을 준비 중이지만 금융권이 "1차 분양률이 적정선에 도달하기 전에는 PF대출을 해 줄 수 없다"고 통보하는 바람에 사업이 지연될까봐 조바심을 태우고 있다.

심지어 경부고속철도 등 개발재료가 많은 충남 천안지역의 경우도 상당수 시중은행들이 주택사업에 대한 신규 대출을 사실상 중단하면서 지역주택건설업체인 D사와 K사는 최근 본사를 인근 지역인 아산으로 옮기기도 했다.

천안시 성성동에 아파트 분양을 준비 중인 G사도 PF대출 중단으로 토지 매입 잔금을 치르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자 사업포기 여부를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자본력 약한 시행사들 직격탄

주택건설업체들에 비해 자본이나 인력이 취약한 시행사들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땅을 계약하기만 하면 2배는 남긴다"는 소리를 들으며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던 시행사들은 부동산 경기침체,주택담보 대출규제,PF대출 제한 등 '3중고' 속에 상당수 업체들이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은행권이나 저축은행들은 사업자금 대출을 꺼리고,대형건설업체 등 시공사는 조금만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아예 수주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행사들은 대부분 토지계약금(땅값의 10%) 수준인 50억원 안팎의 자본금으로 사업을 벌이는 사례가 많아 금융권의 대출보류는 곧 '도산'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5년째 시행업을 하고 있는 I사 O사장은 "어렵사리 PF를 받은 업체들도 분양시장 침체로 자금압박이 가중되고 있는 만큼 이런 상황이 조금만 계속되면 상당수 시행사들이 연말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며 "조만간 자금난에 봉착한 시행사들이 생존을 위해 내놓은 사업부지가 대거 쏟아져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상가시장 직격탄

주택에 비해 수익성이 떨어지는 상가시장도 PF대출 중단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상가 후분양제 시행 등으로 가뜩이나 자금회수가 늦어진 마당에 금융권마저 PF 대출을 꺼려 사업추진이 더욱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달 12일부터 부과되고 있는 기반시설부담금이 상가 분양업체들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연면적 2500평 규모의 상가빌딩을 지으려던 A사는 기반시설부담금이 총공사비의 40% 선인 35억원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금융회사가 시공사 지급보증을 요구하자 결국 사업을 포기했다.

일반상가보다 인기가 높은 택지개발지구의 근린상가나 소규모 상가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달 화성 동탄지구의 중심상업지 근린상가 분양에 나섰던 D사는 중도에 분양을 포기하고 사업을 접었다.

PF대출이 막히자 사업자금 확보를 위해 고분양가를 책정하면서 투자자로부터 외면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강민석 연구원은 "주택·상가 분양률 악화로 금융권이 대출을 꺼리고 이로 인해 건설업체들이 더욱 위축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며 "규제완화 등 가시적인 조치가 나오지 않을 경우 전반적인 경기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철 기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