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하반기 국정운영 구상의 윤곽을 제시했다.

노 대통령은 공식 집무에 복귀하기에 앞서 6일 여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 오찬회동을 가진 자리에서 당면현안인 당청관계를 비롯, 자신과 집권여당의 정치적 진로, 나아가 향후 정치권 재편에 관한 의중을 비교적 명료하게 정리했다.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최근 불거진 `인사권 갈등' 논란의 해법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그 연장선에서 `수석당원'으로서 여당과 정치현실을 보는 시각을 가감없이 표출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먼저 인사권 논란에 대해 `대통령 고유권한'이라는 원칙을 재확인하면서 "당이 합당한 절차를 통해 조언과 건의를 할 수 있다"며 탄력적 태도를 보였다.

"더 이상 민심을 거슬리지 않아야 한다"는 여당의 절박한 입장을 감안해 대통령 인사권의 불가침성을 강조하던 자세에서 다소 후퇴, 적정선에서 타협을 택한 셈이다.

노 대통령 역시 당청갈등이 최악의 상황으로 전개되면 결국 여권이 공멸할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을 공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노 대통령이 이날 "탈당은 하지 않겠다"고 재삼 강조한 것도 여권내 위기감이 대통령의 당적 정리문제에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는 점을 의식, 당과 명운을 같이 하겠다는 책임감의 표시로 여겨진다.

그 맥락에서 나온 노 대통령의 `백의종군' 선언은 향후 정계개편 방향과도 맞물려 갖은 해석을 낳고 있다.

노 대통령은 회동에서 "배를 갈아타면 배가 갖고 있는 좋은 정책과 노선도 수정하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이 배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5.31 지방선거 후 `대통령 탈당'을 전제로 한 정계개편 시나리오에 잔뜩 힘이 실리고 있는 기류에 쐐기를 박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언급은 과거 헤쳐모여식 `수의 정치'가 아니라 상식과 원칙을 지키는 것이 정권재창출의 길이라는 평소 지론을 강조한 것이지만, 향후 대선정국에서 일정 부분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처럼 노 대통령이 휴가중 8.15 경축사 준비와 함께 정국구상에 상당 시간을 할애한 것은 역설적으로 외교.안보 문제가 엄중하다는 상황인식의 발로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갈수록 꼬이고 있는 남북관계와 한일관계, 한미동맹 재정립 등 앞으로 외치에 전념하기 위해 내부 문제에 대한 큰 틀의 입장정리 필요성을 절감하고, 차제에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는 것이다.

시기적으로 일본의 대북 강경파인 아베 신조 관방장관이 차기 총리로 유력시되고 있는 가운데 노 대통령은 9월에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참석과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특히 조지 부시 대통령과의 워싱턴 정상회담에선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문제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국운과 직결되는 큰 과제가 테이블에 놓여있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文在寅)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법무장관 기용문제와 후임 교육부총리 인선의 가닥이 잡히고 나면 노 대통령의 외치 행보는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기국회가 종료되는 연말까지 노 대통령은 정국 현안 등 국내 문제에 대해서는 가급적 거리를 둔 채 상황을 관망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기자 j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