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느 외국 경제주간지 기사에 따르면 "그동안 중국에 가려져 주목을 덜 받았지만 인도가 이륙(take-off)한 것은 확실하다.

제도개혁이 잘 되면 아주 높이 날 것"이라고 한다.

제 3세계 빈곤의 원인을 선진공업국의 '제국주의적 착취' 탓에 돌리던 '종속이론','비동맹'이 유행했던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이제 세계 곳곳에서 산업혁명시대를 방불케 하는 맹렬한 공업화뉴스를 대하게 되었으니 격세지감이다.

19세기 유럽경제사가 현재의 공업화에 정형화된 모델을 제공할 수는 없겠지만 유럽후발공업국이 최초의 산업국 영국을 따라잡기 위해 경주했던 노력(제도개혁)을 살펴봄직하다.

후발국의 공업화 유형도 과정,시기,지리적으로 다양했다.

하지만 영국과 비교할 때 이들에 공통된 특징도 있었다.

공업화에서 철도의 역할이 영국보다 대륙에서 더 컸다.

대규모 자본이 소요되는 중공업발전과 함께 금융,경영기술 진전이 이루어졌다.

공업화 초기단계부터 기업통합,경쟁제한이 추구되었다.

또한 영국보다 공업화의 정도가 덜 했고 농업비중이 컸다.

대륙에는 지리적,부문별로 공업화가 진행되면서 1880년대까지 농촌선대제 생산방식이 더욱 확산되었다.

이처럼 경제의 이중구조가 오래 유지되었다.

프랑스의 공업화는 점진적이었다.

공업화시기에 인구증가가 느리고 출산율,사망률도 격감하는,매우 특징적 인구동태를 보였다.

인구의 지리적 이동성이 작고 이민도 별로 없었다. 이는 프랑스의 분할상속제와도 관련된다(영국은 장자상속제).분할상속으로 토지소유규모가 줄면서 농업경영 기술도입에 불리했다.

봉건제가 오랜 세월에 걸쳐 서서히 해체되었으며 농민층분해가 별로 활발하지 않았다.

프랑스혁명과 전쟁으로 사회혼란이 빚어지고 인플레이션이 야기되어 공업화가 지연되었다.

그러나 혁명이후 도량형통일,행정과 교육제도개혁 등은 공업화에 도움이 됐다.

'나폴레옹법전'은 사유재산제를 확인하고 재산상속 시 유언자의 재량권을 확대시켜 토지,공장소유자의 권리를 보장했다.

이후 나폴레옹의 유럽지배는 역설적이게도 자국보다 인근 나라의 근대화에 일조했다.

중앙은행('프랑스은행')이 설립되고 전국도로망도 갖춰졌다.

빈곤치유의 목적으로 산업발전을 강조한 생시몽(C.Saint-Simon)의 사상이 공업화추진 이데올로기로 한몫했다.

프랑스인의 수요구조가 독특해 대량생산보다는 사치품을 겨냥한 소상품생산자 위주의 공업이 성장한 것도 주요 특징이다.

그랑제콜(grandes ecoles)이 대학을 제치고 고등교육을 주도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역사의 산물이다.

독일에서 공업화에 기여한 주요개혁은 대략 세 가지다.

첫째,농노제폐지다.

서부독일에서 영주와 농민 간 인적 결합이 오랜 기간에 해체되어 이미 18세기에 공업노동력 충원이 가능했다.

세습농노제가 유지되던 동부독일에서는 농노해방을 거쳐 노동력이 공업중심지로 자유롭게 이동했다.

공장지대로 이동한 농노는 억압상태에 익숙하던 터라 공장규율에 비교적 쉽게 적응했다.

토지개혁의 목표는 농민에게 땅을 분배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땅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할 사람의 손에 두어 농업산출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과거에 농노노동으로 농장을 운영하던 영주가 이제 임금노동을 고용하는 더욱 넓어진 대토지 경영자(융커)로 탈바꿈한 것이다.

둘째,관세동맹(1834년)으로 통일된 단일시장이 성립했다.

이는 독일이 다음 세대에 단일 국민국가로 통일될 초석이 되었다.

리스트(F.List)는 '공업추진이 국가를 방어하는 것'으로 보고 분열된 독일나라들 간의 관세동맹 형성을 지지하며 공업화 추진 이데올로기를 제공했다.

또한 '유치산업 보호'를 주창하여 제조업품 수입에 관세를 부과하게 했다.

오늘날 여러 나라가 사양산업을 보호하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셋째,19세기 독일은 국민교육면에서 유럽 어느 나라보다도 앞서 있었다.

당시 정치적으로 진보한 영국조차 포스터교육법(1871년) 이전에는 기초교육체계라 할 만한 것이 별로 없었다.

독일나라들은 이미 18세기에 초등학교제도와 아동의무교육법안을 만들었다.

1830년 이후 거의 모든 독일인이 글을 읽고 쓸 줄 알게되어 19세기 말이면 징집된 군인의 문맹률이 0.05%로 유럽전체에서도 가장 낮았다.

중등교육과정에서 과학기술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프로이센 고등학생의 약 30∼35%가 실업학교(Realschule)에 다녔다.

19세기 말 과학기술 지식과 관련된 2차산업화(전기,화학)기에 독일은 고도성장가도를 달리며 영국을 능가한다.

독일은 나치 정권하에서 고급인력이 유출되기 전까지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나라이기도 하다.

현재는 고등교육에 자유경쟁원리를 도입하려는 개혁이 한창이다.

이제 막 이륙하여 높이 날려는 인도도 교육개혁이 주요 현안인 모양이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도 양질의 교육과 높은 교육열에 힘입은 바 컸다.

그러나 중등교육의 평준화 때문에 효율이 많이 상실된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서울대 경제학 dyang@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