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철 '조작간첩사건'에 대한 재심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고충정 수석부장판사)는 14일 오전 간첩활동을 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2년 간 복역하다 지난 1998년 8.15 특사 때 가석방된 강희철(47.제주도 북제주군 조천읍 신촌리)씨의 재심 청구건에 대해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불법 구금한 사실을 당시 수사관들도 인정하고 있어 재심 개시 결정을 내린다"고 판결했다.

강씨는 판결 즉시 법원 현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86년 4월 28일부터 21년간 어렵고 힘든 일이 많았는데 재심 개시 결정이 내려져 너무 기쁘다"며 "앞으로 많은 분들이 재심을 기다리고 있는데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수사관들이 증오스럽지만 5공 정권하라는 점, 상부의 지시에 따를 수 밖에 없는 시절이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 있다"며 "재심 개시후 수사관들의 진실한 답변을 이끌어 내고 싶다"고 말했다.

변호인인 법무법인 덕수의 최병모 변호사는 "북한이 무력적화통일을 포기한 80년대의 시대적 상황을 감안할 때 강희철 사건은 정권 차원의 조작이 아니라 당시 간첩을 검거하면 1계급 특진이 주어지는 상황에서 경찰관들이 스스로 조작한 사건으로 본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이어 "강희철 사건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조작된 범죄사건이고 현재까지 고통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공소시효가 지났더라도 본안에서 무죄가 선고되면 국가의 형사보상책임을 추궁하는 것이 가능하다"며 최종길 교수 사건을 예로 들었다.

또 이장형.강희철과 함께하는 사람들도 기자회견문을 통해 "국가보안법에 의한 희생자 강희철씨의 재심청구건에 대한 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을 환영한다"며 "이는 어두운 역사의 한 부분을 담당해왔던 사법부가 과거의 인권유린에 대해 '결자해지'의 모습을 보여준 용기있는 결단"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아울러 같은 시기에 재심을 청구한 이장형씨 사건에 대해 심리조차 시작하지 않은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며, 조속한 시일에 강희철씨와 같은 결과가 나 오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강희철씨는 1975년 만 15세에 일본으로 밀항한 뒤 당시 오사카시에 있던 부모의 집에 살며 오사카조선고급학교를 졸업하고 프레스공작에 취업했다 불법체류자로 검거된뒤 1981년 환송돼 부산 3104보안대에서 3일동안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전기고문과 모진 구타를 당하며 조사를 받았으나 무혐의로 풀려났다.

이후 강씨는 부산에서 방위병 복무를 마치고 제주에서 거주하며 호텔 종업원 등으로 근무하던 중 1986년 당시 제주도경찰국 정보과 정보3계 소속 경찰관 박모씨 등에 의해 제주시 광양로터리 소재 소위 대공분실로 강제연행됐다.

강씨는 영장없이 대공분실에 85일간 불법감금된 상태에서 모진 폭행과 물고문을 당해 간철활동을 해왔다는 허위 자백을 했으며, 1987년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형이 확정돼 12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연합뉴스) 김호천 기자 kh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