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이용욱씨(33)는 요즘 짜증이 머리 꼭대기까지 난 상태다.

3개월 전 구형 냉장고 한 대 가격의 거금을 주고 산 휴대폰이 연신 고장난 탓이다.

회사일도 많은데 고장날 때마다 서비스센터를 들락거리는 일이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몇 번이고 휴대폰을 내동댕이치고 싶었지만 돈이 아까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그는 "휴대폰 소프트웨어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는 이렇게 고장이 잦을 리 없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하지만 서비스센터 직원들은 한사코 제품 문제를 탓하기보다 "중국산 비규격 어댑터를 써서 그렇다"거나 "땀이 많이 흘러 혼선이 생겼을 수도 있다"는 등의 이상한 변명만 반복한다.

최근 정보기술(IT) 제품의 컨버전스화가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기능도 첨단화하면서 제품개발 단계에서 미처 고려하지 못한 잔고장이 늘어나는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시장은 첨단 제품의 오류를 알아보는 '베타 테스터'라는 오명을 사고 있다.

오죽하면 한국에서 첨단 제품을 사려면 출시 후 최소 6개월 뒤에 사라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첨단폰은 '버그폰'

세계 최초·최고 경쟁이 심한 첨단 휴대폰은 각종 오류로 인한 소비자 불만도 가장 많이 쌓이는 제품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권상우폰'(SPH-V4400)의 소프트웨어 오류에 대한 소비자단체의 고발로 한 차례 홍역을 치른 데 이어 위성DMB폰인 'SCH-B200' 모델을 소프트웨어 버그 때문에 전량 회수한 경험을 갖고 있다.

올해 들어서도 '블루블랙II'(SCH-B360)를 유통 초기 '카스칩(수신제한장치)' 불량으로 전량 수거했고 베스트셀러폰인 '미니 블루블랙폰(SCH-S350)'은 액정이 하얗게 변하는 백화 현상으로 뒤처리에 적잖은 고생을 해야 했다.

LG전자는 주력 상품인 초콜릿폰이 출시 초기 터치패드 불량 등으로 소비자들의 제품 교환 요구에 시달렸다.

영국 수출 상품의 경우 충전기 불량으로 초기 판매분 200대를 전량 회수하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HP 브랜드로 선보인 PDA폰 'RW6100'은 배터리 불량에 터치스크린 성능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불만을 들었다.

지난해에는 '업앤다운 슬라이드폰(LG-LP3900)'이 소프트웨어 버그로 제품 출시 자체가 오랫동안 지연되는 등 적잖은 부담을 느끼기도 했다.

모토로라의 대박 상품인 슬림폰 레이저도 출시 초기에 일부 제품 키패드에서 문제가 생겨 구설수에 올랐고 팬택계열의 일부 제품도 LCD액정 등 몇 가지 부품에서 고장이 발생하는 불명예를 지기도 했다.

하드웨어 기기도 오류 투성이

최근 급속도로 보급이 확산되고 있는 휴대용 멀티미디어 플레이어(PMP)는 유해전자파 파문으로 제품 수거 파동을 겪었다.

전파연구소가 실시한 전자파 적합성(EMC) 테스트에서 기준치 초과로 '부적합'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디지털큐브는 지난달 '아이스테이션 V43' 제품을 수거했고 SKC&C는 '씨앤씨' 제품 리콜에 나섰다.

노트북 분야에서도 소비자 불만이 적지 않다.

델인터내셔널은 지난해 말 노트북 제품인 '래티튜드' 일부 모델의 배터리에 결함이 발견돼 리콜 조치했다.

HP는 올초 미국에서 컴퓨터의 본체 기판에 결함이 생겨 컴퓨터 작동이 자주 중단돼 소송을 당했다.

소비자들은 이 소송에서 현금 환불 등의 피해 배상을 받았다.

2003년 최신 슬림폰 정도의 두께인 14.9mm의 초박형 노트북 '포테제R100'을 선보였던 도시바도 슬림형 노트북이 발열 문제와 제품 안정성에서 기존 제품만 못하자 최근에는 두꺼운 노트북 위주의 신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제품이 얇아지자 쉽게 열을 받는 등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런 잇따른 제품 버그에 대해 IT기기 제조업체들은 "100% 완벽한 제품은 없으며 대부분의 경우 제품이 본격 유통되기 전에 회수하거나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명한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 같은 제조사들의 해명이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은 "업체 간의 과도한 기술 위주 경쟁이 제품의 오류를 수반하고 있다"며 "폐쇄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사전 테스트를 공개 테스트로 전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제품 오류를 쉬쉬하며 덮으려 하기보다 솔직히 공개해 오류가 반복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특히 요즘 IT 제품들은 대부분 고가인 만큼 고장 발생시 즉각 교환해주거나 현금 반환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잦은 고장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신제품을 쏟아내는 데 따른 부작용인 것이 분명한 만큼 기업의 보상체계 또한 철저해야 한다는 게 소비자들의 요구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