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모기지론(주택담보대출) 업체인 패니매가 110억달러 (10조4500억원)규모의 분식회계를 저질렀으며 벌금으로 4억달러(3800억원)를 내기로 합의했다는 감독 당국의 발표가 나오면서 미국 사회가 또다시 충격을 받았다.

2002년 엔론의 초대형 회계 조작 사건 이후 나름대로 자정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이번 사태로 미국 기업의 회계 투명성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의 충격과 허탈감은 증권거래위원회(SEC)와 함께 패니매의 분식회계 사건을 조사한 연방주택기업감독청(OFHEO)의 '패니매 리포트'에 그대로 드러난다.

27개월간의 조사 기간을 거쳐 23일 발표된 348페이지 분량의 이 보고서는 "패니매의 오만하고 비윤리적인 기업문화가 대규모 회계 조작으로 이어졌다"고 비판했다.

제임스 록하트 OFHEO 집행이사는 "패니매의 최고 경영진은 패니매가 위험 관리와 금융 보고서 작성,내부 통제,기업 지배구조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홍보해왔지만 이 같은 이미지는 허울뿐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그는 "검사 결과 패니매 내부에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기업 환경이 만연해 있었다"며 "최고 경영진이 보너스를 가능한 한 많이 받아내기 위해 회계장부를 조작하고 내부감사인과 공모했을 뿐아니라 의회 로비스트를 통해 감독당국의 조사를 방해하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피터 래트만 칼럼니스트는 "패니매 보고서를 출력해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읽어보라.(회계조작 수법 등이) 소설 다빈치 코드보다 훨씬 재미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OFHEO 조사에 따르면 패니매는 실적을 부풀리고 경영진의 보너스를 인상하기 위해 적어도 1998년부터 2004년까지 7년 이상 회계장부를 조작했다.

비용 누락과 수익 과다 계상,파생상품의 가격 변동 미반영 등 수많은 항목에서 '백화점식'으로 회계 기준을 위반했다.

변칙회계로 늘어난 순이익은 무려 110억달러에 달했다.

회계 조작 파문으로 2004년 12월 물러난 프랭클린 D 레인즈 전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1998년부터 2003년까지 받은 연봉 9000만달러 가운데 5200만달러 이상이 이처럼 부풀려진 실적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보고서는 현 대니얼 머드 CEO도 레인즈 전 회장 체제에서 최고운영책임자(COO)로 근무하면서 회계 조작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있다고 밝혀 그에 대한 책임 공방도 가열되고 있다.

패니매는 이날 성명을 통해 "회계조작과 내부통제,지배구조,기업문화,공시 등 보고서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된 모든 사항에 대해 감독당국의 개선 명령을 따르겠다"고 밝혔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