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측이 현대·기아자동차를 비롯한 한국 자동차 업체에 대한 공세 수위를 한층 높이고 있다.

특히 미국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앞두고 사전 시장개방 압력을 강화하고 있고 미국 내에서는 반(反) 외제차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어 현대·기아차에 비상이 걸렸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은 FTA 타결 전에 한국이 자동차 시장을 먼저 개방해야 한다며 강한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온라인 무역정보 전문지인 인사이드 유에스 트레이드는 최근 "미 자동차무역정책위원회가 한국으로부터 자동차 시장 사전개방 조치를 얻어내기 위해 미 무역대표부와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측의 이런 움직임은 자국 자동차업계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

미국 내 반 외제차 캠페인도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민권 운동가인 제시 잭슨 목사는 지난 11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소수민족 자동차딜러 모임에 참석,"현대·기아차의 경우 흑인과 히스패닉 등 소수 민족 판매가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데도 이들을 배려하는 프로그램이 없다"고 지적했다.

앞서 디트로이트에 본부를 둔 민간단체 레벨 필드 인스티튜트도 "한국과 일본 업체들이 미국 내 고용 확대를 외면하고 있다"며 반 외제차 캠페인을 선언했다.

이런 와중에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자동차 '빅3' 총수와 조지 부시 대통령이 오는 18일 백악관에서 만나 미 자동차 산업의 위기 타개책을 논의할 예정이서 현대·기아차를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는 미국측의 이 같은 움직임이 내수 및 수출을 크게 위축시킬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

실제 미국의 관세율은 2.5%(승용차 기준)인데 비해 한국은 8.0%여서 관세가 폐지되면 한국차의 수출보다는 미국차의 수입이 급증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 관계자는 "배기량 2000cc를 초과하는 승용차를 기준으로 현행 8%인 수입관세가 철폐되면 특소세 교육세 부가세 등을 포함해 국내 판매가격이 7.4%가량 인하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미국에서 실어오는 운송료와 보험료를 합쳐도 기존 관세에 크게 못 미치기 때문에 미국에서 만들어진 일본차의 우회 수입이 늘어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내 반 외제차 기류도 걱정거리다.

달러당 원화 환율의 급락 여파와 검찰 수사로 인한 브랜드 인지도 추락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현대·기아차에는 치명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미국 내 여론이 악화돼 한국과 일본 차량에 대한 불매운동이라도 벌어지면 그야말로 큰 일"이라며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의 판매가 위축될 경우 현대·기아차의 성장세도 급격히 꺾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