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와 천연가스를 운반하는 파이프라인이 자원 강국들의 영향력 확대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고유가로 위상이 한껏 높아진 에너지 부국들이 초장거리 파이프라인 건설을 추진하면서 이를 정치·외교적 영향력을 키우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국의 에너지 자원을 수출할 송유관과 천연가스관을 앞세워 주변국과 정치적 연합을 강화하거나 적대국에 제재를 가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란 베네수엘라 러시아 등이 파이프라인을 통해 인근 국가들에 위세를 떨치고 있다며 이를 '파이프라인의 힘'이라고 14일 보도했다.

워싱턴에 있는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에너지프로그램 담당 이사 프랭크 베라스트로는 "파이프라인이 정치적 수단으로 본격 이용되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자원 강국의 새 무기

이란과 베네수엘라는 미국에 맞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새로운 무기로 파이프라인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란은 파키스탄을 거쳐 인도로 이어지는 총 공사비 70억달러 규모의 2500km짜리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 파이프라인을 중국까지 연장시키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이란은 천연가스관이 건설되면 인도를 자신들의 영향권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이 때문에 미국은 이 계획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워싱턴 소재 세계안보분석연구소(IAGS)의 앤 코린 이사는 "미국은 인도가 천연가스관을 통해 이란에 신세를 지는 일을 절대로 방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남미 반미 세력을 이끌고 있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브라질을 거쳐 아르헨티나로 연결되는 길이 1만2000km,건설비용 230억달러의 천연가스관 건설 구상을 발표했다.

NYT는 차베스의 이 계획이 천연가스를 배로 수송하기 위해 항구 등 인프라를 갖추는 것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경제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는 '남미 통합을 위한 중요한 진전'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면서 이 사업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서방 견제 수단으로 활용

러시아도 동시베리아 파이프라인 노선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중국과 일본의 치열한 경쟁을 유도,경제적 실리를 챙기고 있으며 이를 서방 견제 수단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가즈프롬의 영향력 확대에 서방이 반발하자 "에너지 수출 길을 유럽에서 아시아로 돌릴 수 있다"고 위협할 수 있었던 것도 동시베리아 송유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올해 초 공급 가격을 문제삼아 우크라이나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유럽 전역에 에너지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를 통해 유럽으로 향하는 가스관의 밸브를 언제든지 닫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국의 영향력을 과시했다.

이 때문에 서방 국가들에선 러시아에 대한 경계감이 커지고 있다.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은 최근 리투아니아를 방문,"러시아가 석유와 천연가스를 다른 나라를 위협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고려하고 있는 파이프라인 건설에서 러시아를 배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