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A은행의 기업금융부에 비상이 걸렸다.

신세계그룹의 주채권은행 자리를 국민은행에 사실상 빼앗길 처지에 놓인 것이다.

물론 신세계 계열사들이 대출 거래를 하루아침에 A은행에서 국민은행으로 옮긴 것은 아니다.

이유는 국민은행이 조선호텔 신세계건설 등 신세계 계열 14개 기업의 자금부에 가상점포인 '사이버 브랜치(Cyber branch)'를 깔기로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사이버 브랜치의 위력

사이버 브랜치는 구매 판매 급여 현금관리 등 모든 자금 흐름을 은행 전산망과 연결시켜 회사 내부에서 실시간으로 자금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통합자금관리 시스템이다.

기업 내부에 가상의 은행 지점을 설치하는 셈.

신세계 계열사들이 일제히 사이버 브랜치를 깔기로 한 것은 지난해부터 사이버 브랜치를 이용해 온 모기업 신세계의 권유에 따른 것이다.

이유는 자금 관리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령 전국 10여개 은행의 지점과 거래하며 100여개의 계좌를 갖고 있는 기업이 자금 현황을 파악하려면 경리부 직원들이 계좌 수십 개씩을 맡아 해당 은행 인터넷뱅킹에 접속,일일이 잔액을 조회하고 합산해야 했다.

하지만 사이버 브랜치를 이용하면 전담 직원 1명이 간단한 프로그램 조작으로 계좌별 잔액과 총액을 모니터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여러 은행에 흩어져 있는 계좌에서 동시에 출금할 수도 있다.

신세계 자금부 관계자는 "모든 자금 흐름을 전산시스템에서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고 감사 부서가 실시간으로 확인이 가능해 기업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주영구 국민은행 기업 자금관리서비스 부장은 "과거에는 여신 최다 은행인 주거래은행 역할을 하면서 해당 기업과의 거래를 통해 부수적 이익을 누렸지만 자금잉여 시대로 접어든 지금은 어느 은행의 통합자금관리 시스템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주거래 은행 개념이 바뀔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기업금융의 새 수익 모델로 부상

기업금융 분야의 '약체'로 꼽히는 국민은행이 사이버 브랜치를 무기로 기업금융 시장을 파고들자 다른 은행들도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기업은행은 2004년 말 중소기업 대상의 사이버 브랜치인 '캐시원'을 내놓은 데 이어 지난해에는 매출 300억원 이상의 중견 및 대기업을 대상으로 'e-브랜치'를 선보였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10월 기업 자금관리 서비스인 'WIN-CMS'를 내놓았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하나캐시링커(Hana Cash Linker)'를 출시해 고객 유치에 나서고 있으며,대구은행 등 지방 은행도 사이버 브랜치 영업을 시작했다.

이처럼 은행권이 사이버 브랜치 경쟁에 나서고 있는 것은 기업금융의 포커스가 과거 대출 비즈니스에서 '트랜젝션뱅킹(Transaction Banking)'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거래,자금결제,채권발행 등 각종 재무거래를 은행이 대행하면서 수수료를 받는 트랜젝센뱅킹은 대출에 비해 순영업 마진이 훨씬 높아 선진 은행에서는 투자은행(IB) 업무와 함께 기업금융의 핵심 수익원으로 자리잡고 있다.

노양환 우리은행 e비즈니스사업단 부부장은 "기업대출 비중이 점차 감소하고 있어 우리나라에서도 앞으로는 통합자금관리 시스템 등 트랜젝션뱅킹 비즈니스가 기업금융의 새로운 수익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