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상선 지분 매입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현대중공업의 대주주인 정몽준 의원의 속내를 놓고 양측간에 진실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현대그룹은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상선 지분 26.68%를 매입한 것에 대해 경영권 행사목적이며 그 배후에 정몽준 의원이 있다고 비난하고 있지만, 현대중공업은 외국인의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막기위한 우호적인 목적으로 참여했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분쟁의 핵심은 적통 잇기?

정몽준 의원의 형수인 현정은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은 지난해부터 현대건설 인수 의사를 내비치면서 준비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이번에 유상증자를 추진하는 것도 현대건설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의도라는 게 재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러나 범현대가인 정몽구 회장의 현대.기아차그룹과 정몽준 의원의 현대중공업그룹 등도 결코 현대건설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 없는 상황이다.

현대건설은 고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 창업한 현대그룹의 모태이며 이를 현대그룹이 되찾아 갈 경우 '현대'의 적통성이 '정씨'가 아닌 '현씨'에게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범현대가는 현대건설 인수를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현대그룹에 제동을 걸어야 할 상황이 됐으며 이에 따라 정몽준 의원이 결단을 내렸을 수 있다.

특히 정몽구 회장이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 수사에 시달리고 결국 구속까지 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현 회장을 견제할 범현대가 인물로는 정몽준 의원이 나설 수 밖에 없지 않았겠느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또 현대중공업이 최근 수주 호황으로 현금 유동성이 풍부하다는 점도 해결사로 나섰다는 추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현대그룹측은 "우리 자체 분석으로는 골라LNG의 지분이 결코 적대적 M&A를 위협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판단했는데 현대중공업이 일방적으로 백기사라고 자처하면 지분을 전량 매입한 것은 현대그룹을 접수하겠다는 뜻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정몽준 의중 작용했나

현대그룹은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상선 지분을 대거 매입하자 현정은 회장은 "경영권을 빼앗으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정몽준 의원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측은 "정몽준 의원이 이번 지분 매입과 관련해 범현대가와 상의한 적도 없으며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이사회에서 결정된 사안일 뿐 현대중공업에 아무런 직책도 없는 정 의원과는 무관한 일이다"고 주장했다.

물론 현대중공업이 이사회 중심의 전문 경영인 체제로 운영되지만 대주주인 정몽준 의원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5천억원 정도가 소요된 현대상선 지분 매입에 그의 뜻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그룹측은 이같은 정 의원의 속내가 현대상선 경영권을 획득해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를 막고 아울러 현대건설까지 현대중공업이 접수하려는 시나리오라고 주장했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현대상선이 접수되면 사실상 현대그룹에는 현대엘리베이터 밖에 남지 않는다"면서 "더구나 실탄 공급처인 현대상선이 현대중공업과 경영권 다툼을 벌이면 현대건설 인수 자금을 마련할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결국 정 의원의 현대중공업은 현대상선 지분 매입을 통해 현대그룹이 자사 경영권 확보에 급급하도록 만들어놓은 사이 현대건설 인수해 다시 현대그룹을 접수하는 고도의 전략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측은 "현재 현금 유동성이 풍부한 관계로 주주 이익 극대화 차원에서 투자 목적으로 현대상선 지분을 매입했으며 이미 대국민 선언을 통해 이같은 의사를 밝혔다"고 반박했다.

현대 관련 관계자는 "정치인인 정 의원이 현대가 적통을 잇겠다고 형수와 싸움을 벌일 가능성은 커보이지 않는다"면서 "이미 투자 목적이라고 여러 차례 밝힌 상황이라 나중에 경영 참여로 바꾸면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영권 분쟁 장기화 국면

이번 현대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의 갈등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현정은 회장은 우호세력을 합쳐 35% 정도의 지분을 갖고 있으며 현대중공업그룹은 KCC 지분(6.26%)까지 합치면 33% 정도를 확보해 서로 박빙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현대그룹은 "현대중공업은 현대상선 지분 10%를 매각하고 백기사라는 증거를 보여달라"고 요구했지만 현대중공업은 "현재로선 매각할 수 없지만 투자 목적인 것만은 분명하다"며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해 장기 대치 국면으로 돌입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대그룹은 향후 지속적으로 현대중공업측에 지분 매각을 요구함과 동시에 태스크포스를 통해 현대상선 경영권 유지를 위해 자사주 발행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며 현대중공업은 '투자 목적'을 명시한 채 현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이 대국민선언을 통해 투자 목적이라고 밝힌 상황인 데다 정몽구 회장이 구속되는 좋지 않은 상황에서 현대상선 지분 매입으로 논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경영 참여 의도가 있더라도 당분간은 유보할 가능성이 크다.

현대중공업측은 "현대상선 지분 매각과 관련해서는 현대그룹측이 요구한다고 해도 바로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며 주주 이익 극대화 차원에서 고려할 사안이다"며 즉각 행동에 나서지 않을 뜻을 내비쳤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이 현대상선 지분을 틀어쥐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현대건설 인수를 노리는 현대그룹에게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내부적으로 장기전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다방면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박성제 심재훈 기자 president21@yna.co.krsungj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