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신 치나왓 태국 총리가 4일 밤 차기 정부에서 총리직을 맡지 않겠다고 공식 발표함으로써 수개월간 계속돼온 정치혼란이 종식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탁신 총리는 TV 회견을 통해 의회에서 새 총리를 선출할 때까지만 과도총리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탁신 총리는 앞서 3일 밤 TV 정치 대담프로에 나와 2일 총선에서 여당인 `타이 락 타이'(TRT)가 승리했기 때문에 "사임할 이유가 없다"는 강경자세를 보였었다. ◇탁신, 왜 `명예퇴진' 선택했나 = 2일 총선 정당투표에서 전체의 57%인 1천600만표를 얻어 체면치레는 했지만 정치 중심지인 방콕과 이슬람 지역을 중심으로 한 남부 지방의 민심 이반이 심각한 상태에서 총리직을 계속 유지할 경우 국론분열이 더욱 심화될 것이고 이에 대한 책임이 결국 자신에게 모두 돌아올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가졌을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권력 남용과 부패로 인한 도덕성 시비에 휘말려 국내외에서 자신과 현 정부의 이미지가 크게 실추돼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되는 한 `원상회복' 자체가 힘들어지리라는 판단도 작용했다. 이대로 가면 자신은 물론 자신의 가족들에게도 `불똥'이 튀고 종국에는 자신이 창당해 키워온 집권당 TRT에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고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따라서 자신이 차기 총리직을 맡지 않겠다고 `선제공격'을 가함으로써 반대세력의 손발을 묶어놓은 후 TRT의 재집권 가도를 순탄하게 열어놓으려는 의도가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야권의 보이콧속에 치러져 `정통성' 시비가 일던 2일 조기총선 결과에 쐐기를 박아 TRT 주도로 차기 정부를 출범시키겠다는 속셈도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탁신 총리는 또 일단 차기 정부가 출범하고 자기가 점찍은 TRT 내부 인사가 새 총리가 되면 후견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태국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일 총선에서 선거법의 `최소 20% 득표율' 규정에 미달해 낙선한 TRT 단독후보 지역구 39곳에 대해 오는 23일 재선거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총선 한달째가 되는 다음 달 2일까지는 새 하원을 개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향후 태국 정국 어떻게 전개될까 = 탁신 총리가 차기 정부에서 총리직을 맡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함으로써 반탁신세력의 "탁신 퇴진" 요구는 사실상 충족된 것으로 보인다. 반탁신시위를 주도해온 시민단체 연대모임 `국민 민주주의 연대'(PAD)는 탁신 총리가 사임하기 전에는 시위를 중단하지 않겠다며 탁신 총리가 사임하지 않으면 오는 7일 방콕 국회의사당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강행할 수밖에 없다는 공개서한을 4일 오후 탁신 총리에게 전달했다. 따라서 PAD나 야권이 탁신 총리의 "차기 정부 총리직 불수락" 발표를 어떻게 해석할 지 주목된다. 그러나 PAD나 야권으로서는 탁신 총리가 일단 사임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하면 반탁신시위를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던 만큼 탁신 총리의 발표를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탁신 총리가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을 알현한 후 차기 총리직 불수락 방침을 전격 발표하고 총리직 불수락의 주된 이유로 올해가 국왕 대관 60주년이며 기념행사 일정이 두달밖에 남았다는 점을 내세운 것도 PAD나 야권으로서는 큰 부담이다. 이런 현실에 비춰 PAD는 5일 남부 상업도시 핫야이에 이어 7일 방콕 국회의사당 앞 `로열 플라자'에서 갖기로 한 대규모 반탁신 집회를 취소하고 향후 진로를 새롭게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제1민주당과 찻타이,마하촌 등 2일 총선을 보이콧한 3대야당도 탁신 총리가 사임하면 여야 공동으로 2단계 정치개혁을 추진한 후 새로운 총선이 실시되면 이에 참여키로 합의한 상황이므로 탁신 총리의 4일 발표를 거부할 뚜렷한 명분이 없는 셈이다. 여하튼 탁신 총리의 발표를 계기로 여야간에 대화정국이 조성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누가 차기 정부 총리감으로 떠오르나 = 탁신 총리는 3일 밤 TV 정치 대담프로에서 차기 총리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4명 정도를 마음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통인 솜킷 자투스리피탁 부총리 겸 상무장관과 하원의장을 역임한 법률전문가 포킨 파나쿤 부총리 등 2명은 직접 이름을 댔으나 나머지 2명이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누가 탁신 총리의 후임으로 가장 유력한 지 미지수다. 그러나 경제계에서는 솜킷 부총리가 재무장관 등을 역임한 정통 경제관료로, 정치적으로도 중립적인 인물이라는 점에서 차기 총리 최적임자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정작 솜킷 자신은 탁신 총리로부터 차기 총리직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을 뿐 아니라 건강도 썩 좋은 편이 아니라며 고사하는 듯한 몸짓을 보이고 있다. 솜킷은 탁신 총리의 경제정책인 `탁시노믹스'의 근간을 만든 탁월한 경제관료라는 평을 국내외에서 받고 있다. 한국에 다녀온 적이 있고 태국에 진출해 있는 주요 한국 기업 관계자들과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TRT내부에서는 탁신 총리가 포킨 부총리를 차기 총리로 더 눈여겨 보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이런 가운데 탁신 총리가 이름을 밝히지 않은 다른 2명의 차기 총리감이 누구인지도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정계 일각에서는 차투론 차이생 교육부 장관과 프로민 럿수리뎃 총리 비서실장을 꼽기도 한다. 두사람은 학생운동가 출신으로 최근 반탁신시위가 격화되면서 옛 학생운동권 `동지'들로부터 탁신 진영에서 이탈하라는 압력을 받기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두사람은 탁신 정부에서 비교적 깨끗한 이미지를 가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방콕=연합뉴스) 조성부 특파원 sungb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