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英凡 < 한성대 교수·경제학 >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지수와 세계경제포럼(WEF) 지수 등 국제경쟁력 지표를 이용, 한국 노동부문의 경쟁력을 비교 평가해 보면 놀라운 결과가 도출된다. 다른 나라에 비해 인적 자원의 교육 수준과 능률이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노동경쟁력이 노동유연성의 경우 비교국 60개 가운데 44위, 노사관계지수는 최하위, 노동쟁의에 따른 근로손실일수는 미국 호주의 3배, 일본의 45배에 이른다. 특히 우리나라 노조는 조직률(10.8%)이 취약한 반면 분규 건수는 상대적으로 많아 근로자 1인당 쟁의행위에 따른 근로손실일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을 주목할 만 하다. 쟁의행위, 즉 파업, 태업, 직장폐쇄 등 노동관계 당사자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할 목적으로 행하는 활동에 소요된 시간이 이웃나라 일본의 무려 45배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사용자의 지시명령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작업을 하지만 실제로는 작업을 하지 않거나 고의적으로 작업을 지연시키는 태업은 합법적인 쟁의수단 중 하나다. 태업은 표면적으로는 파업 등에 비해 강도가 낮은 쟁의 행위로 인식되지만 결과적으로는 파업 활동에 비해 더 큰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파업에 못지않은 효과를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조는 파업에 대해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무노동 무임금을 피하면서 사용자를 압박하는 쟁의 수단으로 태업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노동 쟁의가 발생했을 때 노사 양측이 갈등을 끝낼 수 있는 이유는 파업 등으로 근로자측은 급여상실,사용자측은 매출손실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조측이 쟁의행위에도 불구하고 부담하는 실질적인 손실은 없거나 사업포기를 전제하지 않고는 직장폐쇄를 단행할 수 없는 서비스업 등과 같은 경우는 태업이 발생할 때 사용자의 대항력에 불균형이 발생해 노사 분규가 악성화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용자가 태업에 대한 무노동무임금 원칙을 좀더 적극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쟁의행위에 대한 노사간 형평성 회복에 나서야 한다. 시민의 발을 묶었던 철도 노조 파업은 시작 4일여 만에 끝이 났다. 시민들의 불편은 컸지만 불편을 감내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러나 태업은 짧게는 수주에서 수개월까지 길게 이어지면서 결과적으로 파업보다도 더 큰 금전적 정신적 피해와 후유증을 초래한다. 더군다나 이와 같은 태업이 공공 부문이나 서비스 부문에서 일어날 경우 발생하는 불편함은 일반 시민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 자명하다. 임금 손실 없는 장기 태업은 또한 근로자들의 직업윤리가 땅에 떨어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더욱 유감스럽다. 아무리 절박한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급여는 100% 받으면서 상황을 악용하는 것은 노사관계를 떠나 기본적인 직업 윤리를 도외시한 것이다. 정부와 기업은 태업에도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해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태업 행위 중에서도 근로제공을 거부하는 태업에 대해서는 직무분석 또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업무량 측정 등의 방법과 생산성 평가 등 합리적인 수치 자료를 근거로 해 일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보여주어야 한다. 생산직종의 경우 평상시의 생산량과 쟁의기간 중의 실적차이가 분명하므로 태업기간 중의 임금지급은 일부 또는 전부를 지급하지 않으면 된다. 사무관리직의 경우나 서비스 업종의 경우는 태업으로 인한 쟁의행위 기간 중의 실적 차이와 함께 직무분석 자료 또는 개인별 업무량 측정 자료를 보완하면 사용자의 임금지급 의무가 면제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쟁의 현장에서의 '페어 플레이(Fair Play)'가 정착될 수 있도록 근본적인 원칙 정립을 통한 정책적인 뒷받침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