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승 < 서울대 교수·경제학 > 재벌(대규모기업집단)의 소속회사가 타 회사의 주식을 보유, 취득하는 한도를 규제하는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최근 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과 박승 한은 총재는 출총제를 폐지하고 기업자율 규제 방식으로 전환하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강철규 전 위원장을 비롯한 공정위 당국자들과 참여연대 및 경실련 등 일부 시민단체는 "시장자율감시에 의한 사후감시로 전환할 만큼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출총제 폐지에 대한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논의를 생산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 정부 당국이 목표하는 규제 목적을 달성하면서도 건전한 기업활동을 위축시키지 않으려면, 출총제가 도입됐던 1980년대 중반의 상황과 20년이 지난 현재의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이 앞서야 한다. 출총제가 공정거래법에 도입된 1986년 당시는 우리 나라 경제에 '대마불사'의 관행이 존재해, 대규모 부채의 조달을 통한 양적 팽창정책이 재벌 총수의 이익과 합치하던 시절이었다. 또한 기업집단에 속하는 모든 계열사를 하나의 기업군으로 간주해 총괄적인 재무제표를 작성할 의무도 없어, 계열사 출자를 통해 부채 비율을 인위적으로 낮추는 것도 가능했다. 소액주주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은 계열사간의 지원도 성행했으며, 계열사들이 상호 채무보증으로 묶여 있어 일부 계열사의 부실이 전체 기업집단의 부실로 이어지는 위험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출총제가 "선단식 경영에 따른 계열사 전체의 동반부실화 위험"을 줄이는데 일정 부분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1997년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우리 나라 기업들은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쳤다. 재벌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30대 재벌 중 반 이상이 사라졌으며 살아 남은 재벌들, 특히 우리나라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상위 재벌의 부채비율이나 수익성은 외환위기 이전과 비교하면 크게 향상됐다. 따라서 '경제 전체의 시스템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해 출총제를 유지한다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다만 계열사의 출자는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총수 일가로 하여금 자신들의 실질 소유권을 초과하는 의결권의 행사를 가능하게 해 적대적 M&A라는 시장 감시 기능을 무력화시키고 사익 추구를 용이하게 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이 문제에 대한 효과적인 해결책이 결코 아니다. 출자한 회사의 소액주주들이 피출자 회사 이사들의 배임행위에 의한 손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이중 대표 소송을 도입하고, 소액주주들이 연대해 쉽게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도록 하는 집단 소송제의 실효성을 강화하는 것이 지배 주주의 사익 추구행위에 대한 직접적이며 효과적인 규제 수단이다. 또한 재벌간의 담합이나 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 경쟁제한적 혼합기업결합은 경쟁법의 집행을 엄정히 해 다스리는 것이 출총제와 같은 사전적이며 일률적인 규제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다. 특히 출총제는 '효율적인 출자'와 '사익추구를 위한 비효율적인 출자'를 고려하지 않는 일률성으로 인해, 정부 당국이 '효율적인 출자'를 선정해 적용을 제외하고 예외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기업 활동에 개입하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또한 시장감시가 비교적 원활히 작동하는 상위 재벌(자산 6조원 이상)을 대상으로 하며, 이러한 감시에서 상대적으로 벗어나 있는 소규모 기업집단은 아예 적용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 효용보다 부작용이 명백히 더 큰 출총제는 폐지하고, 경쟁법의 집행 및 소액 주주의 권리 행사를 모든 기업집단에 강화하는 방향으로 재벌규제정책의 큰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