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개막전 승리를 이끈 치밀한 마운드 운용은 선동열 투수코치의 작품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번 대회에 도입된 투구수 제한 때문에 김인식 감독과 선동열 투수코치는 여간 골치가 아픈 게 아니었다. 1라운드 투구수 상한선인 65개를 의식해야 하고 50개 이상 투구시 최소 4일 휴식, 2일 연속 투구시 최소 하루를 쉬게 해야 하는 규정 때문이다. 특히 개막전인 3일 대만 경기는 2라운드 진출의 분수령이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벌떼 작전'도 불사하는 총력전이 불가피했고 투수들의 컨디션이나 등판 순서도 투구수 계산 못지 않게 선 코치에게 맡겨진 임무였다. 김인식 감독으로부터 마운드 운용 권한을 위임받은 선동열 코치가 처음 선택한 카드는 서재응. 서재응은 `컨트롤의 마법사' `한국판 그렉 매덕스'라고 불릴 만큼 제구력이 뛰어난 투수였고 대만전에도 강한 면모를 보인 점이 낙점의 이유였다. 지난 해 이닝당 투구수가 15.13개로 대표팀 투수 중 손민한(롯데)의 14.45개보다 적었지만 손민한은 충분히 컨디션이 끌어올리지 않은 상태라 평가전에서 합격점을 받은 서재응에 마음이 갔던 것. 선동열 코치는 서재응이 칼날 제구력으로 타자들을 압도하며 3회 2사까지 61개를 뿌려 한계 투구수에 이르자 뺀 뒤 1일 롯데 마린스 평가전 때 인상적 피칭을 한 `잠수함' 김병현(콜로라도)을 올려 언더핸드에 약점을 가진 대만 타자들을 파고 들었다. 공격적 피칭을 이어가던 김병현이 6회 1사 2루에 몰리자 노련한 `좌완' 구대성(한화)을 투입해 급한 불을 껐다. 이번에는 가장 구속이 빠른 박찬호(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호출, 윽박지르듯 한 공격적 피칭을 주문했다. 박찬호는 7회부터 140㎞ 중반의 빠른 직구와 변화구를 섞어가며 절묘한 완급 조절로 2이닝 연속 삼자범퇴시켰다. 선동열 코치는 9회에도 박찬호를 계속 등판시켜 2점차 승리를 마무리하게 했다. 한국팀은 투수들의 컨디션을 파악하고 투구수 관리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한편 절묘한 교체 타이밍을 놓치지 않은 선동열 코치의 용병술이 있었기에 힘겹게 뽑은 2점을 잃지 않는 `지키는 야구'를 결실을 볼 수 있었던 셈이다. (도쿄=연합뉴스) 이동칠 기자 chil881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