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경 < 인제대·백병원 재단본부장 skpaik@inje.ac.kr > 산책이 유일한 운동이며 낙인 나는 아침이건,밤이건 틈나는 대로 양재천을 찾는다. 봄 기운이 상큼하게 다가오는 양재천에는 운동 나온 사람들로 붐빈다. 따라온 강아지도 참 많다. 나도 개를 키우고 있지만 한 사람이 두세 마리씩 데리고 나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 불편하기도 하고 달리다가 밟을까 봐 걱정되기도 한다. 또한 배설물 문제도 심각하다. 정작 주인들은 오랜만에 신나서 뛰어다니는 자기 개들이 그저 신통하고 예쁘기만 한지 흐뭇한 표정이다. 다른 이들에게 방해가 되니 목줄을 매라고 했다가는 면박당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어느 날 희한한 게시판을 보았다. "귀댁의 귀여운 강아지가 양재천에 살고 있는 사나운 너구리에게 물릴 위험이 있으니 꼭 목줄을 매고 나오세요. 그냥 다니다가 너구리에게 물려도 절대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밑에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너구리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아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우리 강아지가 너구리의 공격을 받으면 큰일인데…. '개에게 목줄을 매지 않으면 얼마의 벌금 내야 합니다.' 이런 경고문과는 수준 자체가 다르다. 얼마 전 재미있는 금연 포스터를 보았다. 젊음의 상징인 12세 소년 피터팬이 늙고 추한 모습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그림이었다. 동안 콘테스트가 연일 열리고 동안의 조건과 어려 보이는 화장법이 인터넷 검색어의 최고 순위를 기록하며 동안 연예인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는 요즘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어떻게 하면 좀 더 어려 보이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최대의 관심사인 세상인데 담배 피우면 빨리 겉늙는다는 메시지는 상당히 충격적일 수 있겠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다. 아무리 남을 위해 봉사하고 이타적이 되라고 가르쳐도 나에게 구체적인 이익이나 손해가 없다면 꿈쩍도 하지 않는다. 사실 이런 인간의 이기심이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 시장경제의 근간을 이룬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오묘한 섭리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아직도 양재천에 너구리가 살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지난 여름 홍수 때 떠내려 갔는지 최근에는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오늘도 양재천에서 얌전히 목줄을 매고 주인을 따라다니는 개들을 보며 나는 속으로 미소 짓곤 한다. "양재천 너구리야,정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