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흥기 <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Vilfredo Pareto)는 자원의 가장 효율적인 배분 상태를 파레토 최적(Pareto optimum)이라고 했다. 즉 어떤 사람의 오펠리머티(ophelimity:만족을 주는 힘)를 다른 이보다 더 관대히 대하는 상태에서는 사회자원의 최적분배가 이뤄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경제 정책 역시 한편의 효용을 감소시키지 않으면서 다른 편의 효용을 증대시키는 최적점을 찾아내 사회적 후생을 극대화시키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최근의 금산법 논의 과정을 보면서 생각나는 대목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개정안이 국회 재경위의 표결로 통과돼 본회의만 남겨놓고 있다. 삼성이 유일한 적용 대상이었던 특이한 법 개정안이 내달 초 임시국회를 통과할 경우 삼성생명 보유 삼성전자 지분(7.2%)의 5% 초과분 2.2%는 2년간의 유예 후 의결권이 제한된다.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25.6%) 중 20.6%는 즉시 의결권이 제한되며, 5년 안에 매각해야 한다. 이번 개정안으로 삼성의 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을 것이며, 경영권 위협 문제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이다. 그러나 금번 법 개정안을 뜯어보면 현행 금융업법이나 공정거래법의 엄격한 적용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결국 이해당사자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한 채 1년 이상 소모적 논란만 불러일으킨 것이다. 사실 금융과 산업자본의 문제는 성문법만으로 규율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다양하다. 정책 당국이 일일이 개입하기에는 사회적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굳이 금산분리를 거스를 수 없다면,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첫째, 5%룰을 확대해야 한다. 캐나다는 10%이며, 일본은 명목상 5% 이상 보유할 수 없으나 실제로는 상호출자에 의해 25%까지 금융사의 기업 지분 취득이 가능하다. 국내 금융시장 불안을 야기시킬 수 있을 만큼의 지분 초과보유 수준을 따져 보고 기업의 규모, 신뢰성 등을 고려해 5%룰을 차등적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둘째, 기업 경영권 위협에 대한 확실한 제도적 방어 장치가 필요하다. 계열금융사의 주식매각처분이 출자총액규제 등을 피해가면서 국내 자본만으로 해결하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며, 외국 자본 참여시 우려되는 부작용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 국내 기업의 역차별을 우려할 정도로 금융 감독 수준과 시장 감시 기능이 상당히 강화됐음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오히려 지배구조 측면에서는 허약 체질이 돼 버렸다. 일례로 '2005년 최우수 지배구조 기업(증권선물거래소)'으로 선정됐던 KT&G는 단지 6.59%의 지분 확보를 근거로 아이칸의 선전포고를 받았다. 애초에 이번 법 개정 논란은 금융산업의 균형적 발전이라는 입법 취지와는 거리가 있을 뿐더러 기업의 경쟁력 강화라는 측면에서는 한참 멀어 보였다. 이미 산업자본의 유입 제한이 없는 금융투자회사 육성을 골자로 하는 자본시장통합법에 의하면 금산법은 그 의미를 잃어버린다. 자본시장 개방으로 전방위 경쟁이 필요한 시기에 외환위기 이후의 재벌 문제로 불거져 나온 해묵은 금산 분리 문제는 이제 접어두자.세계적 추세인 금융과 산업 간의 조화로운 발전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하지는 말자.기업의 사기 진작은 고사하고라도 발목을 잡지는 말자는 것이다. 금융산업 발전과 기업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정책 목적을 달성하면서도 경영권 안정을 해치는 부작용 해소를 위해 자원배분이 가장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당국의 성의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