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윤하 < 前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s910213@hanmail.net > 이번에 법관의 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1984년 9월 초임 법관으로 일한 날로부터 21년 6개월이 되었다. 그동안 오로지 재판업무만을 담당하였다. 이러한 경우도 법원에서는 드문 일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법관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왔다. 격변하는 현대사에서 재판업무를 수행하면서, 정치권력의 희미한 압력을 느낀 시절도 있었다. 분노한 시위대의 격렬한 구호에 위협을 느낀 때도 있었다. 언론의 여론몰이에 부담감을 느낀 적도 있었다. 재판의 독립을 저해하는 외부적 요소가 없는 때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언제나 국민의 권리와 의무만 생각하며 재판한 일이 내 삶에서 자랑과 보람으로 느껴진다. 최상의 재판은 아닐지 몰라도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재판을 하였다. 최고의 결과는 아니라 할지라도 그 결과에 사사로움은 추호도 없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나,행여 내 자신이 부족하여 넓게 살펴보지 못한 점이 있지 않았나 염려되어 삼가 옷깃을 여민다. 뒤돌아보니 내 생활이 긍지와 보람으로 찰 수 있도록 해 준 여러 사람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나에게 진정한 법과 사람됨을 가르쳐 준 선배 법관들,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올바른 결론에 도달하기 위하여 치열한 격론을 마다 하지 않았던 내 배석 판사들.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 모든 업무를 자기 일처럼 도와 준 법원가족들.이 모든 분들은 내 삶이 있는 한 잊을 수 없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모두에게 삶의 진정한 행복이 찾아들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지금도 재판의 독립을 저해할 수 있는 외부적 요소와 내부적 요소가 산재한 것 같다. 외부적 요소에 대하여는 남아 계신 법관들과 법원 가족들이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의연하게 대처할 것으로 믿는다. 다만 내부적 요소에 대하여 염려되는 점이 있다. 법관 및 법원 가족들의 위축된 사기와 자긍심의 실추,법원 내부의 인적 갈등요인 등등 현실에서 쉽게 풀 수 없는 문제들이 그것이다. 이것들이 혹여 재판에 영향을 미칠까 두렵다. 국민은 언제나 정당한 재판절차와 공평한 결과를,민원업무에서 친절과 봉사를 희망하고 있다. 국민의 희망이 이루어지려면 법관과 법원 가족에 대한 자긍심 고양과 처우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전문분야의 실무가로서 실질적이고 향상된 교육도 병행되어야 한다. 국민에게 신뢰받고 국가의 버팀목이 될 수 있는 사법부가 될 수 있도록 남아 계신 법관 및 법원 가족의 노력을 기대하며 국민의 권리를 수호하는 사법부,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사법부,국민의 가슴 속에 원칙과 공평함을 깊게 각인시킬 수 있는 사법부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