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이 반대파 100여명을 무차별 연행하는 등 반정부 시위를 원천 봉쇄하고 나선 가운데 필리핀의 '피플파워'(민중 혁명)가 20년의 세월만큼이나 그 힘도 약해졌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피플파워는 1986년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을 몰아낸 주역으로 이들은 피플파워 20주년을 맞는 25일 아로요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날 필리핀 수도 마닐라 시내는 아로요 대통령이 전날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시위 금지령을 발동한 가운데 집회가 취소되는 등 어떠한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았다.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한 성당에서 열린 미사가 유일한 '대중 집회'로 여겨질 정도였다. 1986년 마르코스를 몰아낼 당시 군부의 강경 진압 방침에도 불구하고 100여만명의 군중들이 EDSA 고속도로를 가득 메웠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필리핀의 한 시민은 "사람들은 이제 무감각해져 있으며,아로요 정부가 전복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면서 "아로요가 지금 상황에 대해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로요 대통령은 전날 국가 비상사태를 발동시킨 데 이어 25일엔 야당 정치인,군 장성,대학 교수 등 반대파 100여명을 무차별로 연행했다. 이날 좌파 성향의 크리스핀 벨트란 의원이 자택에서 체포된 데 이어 전날 TV 방송에서 아로요 대통령의 사임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던 퇴역 장성 라몬 몬타노도 경찰에 연행됐다. 필리핀 시위 사태와 관련,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피델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은 "비상사태 선언은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전략과 같은 것"이라고 비난하면서도 "쿠데타 시도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