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예정지 일부를 미리 사들여 건설회사 등에 비싸게 되팔아 부당 이득을 챙기는 '알박기' 폐해를 막기 위해 작년 1월 도입된 매도청구권 제도가 오히려 '알박기'를 합법화하고 조장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현재 매도청구권 제도는 개발 사업자가 전체 사업부지의 90% 이상을 확보하면 나머지 10%의 땅주인에게 시가로 땅을 넘기도록 요청할 수 있게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매도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토지가 '보유 기간 3년 이하'로 제한되는 등 조건이 까다로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알박기' 투기세력들이 거꾸로 이 같은 제도의 허점을 불법 투기의 면죄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토지 보유기간 더 늘려야 매도청구권은 지구단위계획 결정 고시일을 기준으로 지주의 토지 보유 기간이 3년을 넘지 않은 땅을 대상으로 한다. 바꿔 말하면 보유 기간 3년이 넘은 토지는 대상에서 제외돼 건설업체 등이 오랫동안 '알박기'를 한 땅주인과는 별도 협의를 통해 해당 토지를 사들여야 한다는 뜻이 된다. 문제는 바로 3년이란 기준에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지구단위계획 구역 결정 절차가 통상 3~5년에 걸쳐 진행되는 현실을 감안할 때 3년이란 기준은 사전에 개발 정보를 얻어 '알박기'를 시도하는 대다수 투기꾼들을 걸러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김의열 주택협회 제도1팀장은 23일 "당초 주택법 개정안에는 예외인정 기준이 포함되지 않았지만 법사위 검토를 거치면서 사유재산 침해 논란이 불거져 3년이란 꼬리표가 붙게 됐다"며 "이 같은 예외 인정은 3년 이상 된 알박기 토지를 가진 투기 세력을 오히려 보호하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간사업에도 제한적 토지수용권 줘야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한 일부 의원들이 작년 11월 매도청구권의 예외인정 기준을 10년으로 늘리는 주택법 개정안을 공동 발의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업계와 건설 전문가들은 매도청구권 적용범위 확대와 함께 부지매입 비율이 90%를 넘은 민간 주택사업에는 공공 부문과 같은 토지수용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용석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매도청구권 도입에도 불구하고 대상 토지의 땅주인들이 매도를 거부하고 소송을 걸면 1심 판결에만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리게 돼 금융비용 부담을 안은 건설회사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땅주인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건설업체에 토지수용권을 주되 공공 택지처럼 분양가 상한제 등의 규제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만하다"고 강조했다. 민간의 토지수용권 요구에 대해 정부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서명교 건설교통부 주거환경팀장은 "민간의 주택 사업에 토지수용권을 부여하는 것은 사유재산 침해 등 한계를 갖고 있다"며 "다만 매도청구권의 적용범위 기준을 부지매입 비율에 따라 탄력적으로 늘려 주는 방안은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