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량 중소기업을 잡으려는 은행들의 경쟁은 '총성 없는 전쟁'이다. 지난해가 금융대전의 전초전이었다면 올해는 전면전 양상이다. 섭외대상 업체 사장의 성향과 취미,그리고 업체의 은행거래 현황 등을 파악하는 정보전은 기본이다. 어렵게 발굴한 신규 거래처를 도와줘 그 회사의 실적이 좋아지면 어김없이 그 거래처를 뺏으려는 다른 은행 사냥꾼이 출몰한다. 일부 은행의 경우 경쟁 은행 거래처를 유치하면 실적의 두 배를 인정해주며 '고객 뺏기'를 독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행장들이 최일선에서 전쟁을 이끌고 있다. 중소기업에 관한한 기득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기업은행의 강권석 행장은 지난 9일부터 2주간 '기업인 천하지대본'(企業人天下之大本)이란 기치를 내걸고 전국을 돌며 2000명 이상의 중소기업 CEO들을 만나는 강행군을 펼쳤다. 신한은행 신상훈 행장도 최근 부산·경남 지역 기업인 초청 오찬회를 진행한 데 이어 공단 순회 일정을 잡고 있다. 하나은행 김종열 행장과 외환은행 리처드 웨커 행장도 중소기업들을 돌며 영업 투어에 나설 예정이다. 은행들의 사활을 건 경쟁은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관행도 바꾸고 있다. 기존 담보대출은 기술이나 신용대출로 바뀌고 우량 중소기업들에 대한 금리할인과 한도확대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토종은행론을 내세워 공격적인 영업을 하고 있는 우리은행은 대출이 부실화돼도 담당자의 책임을 면제하는 특별대출 상품인 '하이테크론'을 선보였다. 기술력 평가서나 인증서를 보유한 업체에 대해 최고 50억원까지 신용만으로 대출해준다. 대기업이 '전공'인 산업은행도 김창록 총재 취임 이후 중소기업 지원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외국계 은행들도 적극적이다. 선두주자는 HSBC은행.최근 기업자금관리부를 대대적으로 확장키로 했다. JP모건 씨티은행 국민은행 등에서 인력을 스카우트해 기업자금관리부 인원을 12명에서 27명으로 두 배 이상 늘렸다. SC제일은행도 지난해 2개의 중소기업 전담점포를 늘린 데 이어 올 들어선 1월에만 6개의 진지를 신설했다. 이로써 SC제일은행은 전국에 총 52개의 중소기업 전담점포망을 구축했다. 하지만 이 같은 은행들의 '햇볕정책'은 주로 우량 중소기업에 집중된다. 신용도가 낮거나 영세한 중소기업들엔 아직 '그림의 떡'이다. 실제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최근 49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금융회사를 통한 자금 조달이 '곤란하다'(26.5%)는 업체가 '원활'(11.4%)한 업체보다 두 배나 많았다. 담보력과 신용도가 취약한 소기업은 여전히 금융권을 통한 자금 융통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은행들의 대출 경쟁은 이들에게도 희망을 주고 있다. 시중은행 대출 관계자는 "과거 은행의 대출이 기업의 얼굴(재무제표)만 보고 이뤄졌다면 이제는 능력(기술력)과 성격(성장성)을 본다"며 "담보가 없더라도 기술이나 신용을 차곡차곡 쌓고 관리하는 업체에 대해선 대출 길이 점점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