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속마음을 모른 채 지내온 두 남녀가 있다.


친구로 지내온 시간 동안 가슴 한쪽에 켜켜이 쌓였던 감정의 실체를 모른 채, 혹은 알면서도 고백하지 못한 채 두 남녀는 10년이란 세월을 돌아 연인으로 다시 만났다.


영화 '사랑은 놓치다'(감독 추창민, 제작 시네마서비스)는 10년 간 친구로 지낸 남녀의 사랑 이야기다.


2002년 '광복절 특사'에서 호흡을 맞췄던 설경구와 송윤아가 무심한 남자 우재와 짝사랑에 가슴앓이하는 여자 연수로 재회했다.


그 동안 '실미도' '역도산' '공공의 적' 등의 영화에서 잇따라 강한 캐릭터를 연기해 온 설경구에게는 오랜만에 만나는 쉼표 같은 영화다.


영화 데뷔작 '불후의 명작' 이후 코미디, 공포영화 등에 출연했던 송윤아도 다시 멜로영화의 여주인공으로 돌아와 그 서늘한 눈매에 사랑을 담았다.


영화는 1994년부터 10년 간의 세월을 따라간다.


대학 조정선수인 우재는 어느날 애인의 일방적인 이별 통보에 선술집에서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괴로워한다.


그 옆에는 그의 절친한 친구 연수가 있다.


연수는 가슴 절절하게 우재만을 바라보지만 우재의 시선은 항상 다른 곳을 보고 있다.


우재는 실연의 아픔을 견디려고 군입대를 선택하고 면회 등을 통해 가끔 연수와의 만남을 지속하지만 제대 이후로는 연수와의 연락이 끊긴다.


수의사가 된 연수는 잃어버린 개를 찾아달라는 꼬마와 함께 경찰서를 찾고, 고교 조정코치로 근근이 살아가는 우재는 패싸움에 휘말린 학생들 때문에 경찰서 문을 열고 들어선다.


"선생님, 어떤 아줌마가 선생님을 계속 쳐다봐요."


한 학생의 말에 우재는 뒤를 돌아보고 거기에 밝은 미소로 그를 응시하고 있는 연수가 있다.


영화는 10년 만에 만난 이들이 우정에서 사랑으로 방향을 틀면서 일어나는 설렘과 어긋남, 이별의 안타까움 등을 섬세한 시선으로 잡아냈다.


함께 잠자리를 한 뒤에도 '이게 사랑일까?'를 고민하는 우재. 10년 간의 짝사랑이 온기로 데워지는 순간의 행복감에 도취돼 있는 연수는 우재의 "미안하다"는 말에 다시 절망한다.


30대의 사랑에 초점이 맞춰진 영화는 20대의 그것처럼 폭발적인 에너지는 분출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한 걸음 떨어져서 관조하는 여유로움과 사랑에 서툴러 고백 못하는 순수함이 있다.


촌스러운(?) 70~80년대의 감성과 만나는 지점이다.


여백의 미를 강조한 대사와 서늘한 느낌의 영상은 이 영화가 가진 장점. 대사의 절제를 통해 세월로 감지할 수 있는 감정의 교감을 충실하게 표현했다.


'사랑을 놓치다'를 보고 있으면 허진호 감독의 영화들과 닮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마파도'에서 특유의 웃음 코드로 잔재미를 줬던 추창민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곳곳에 유머 코드를 녹여 놓았다.


평생 양어장에서 일을 한 촌부인 연수 엄마(이휘향 분)와 아저씨(장항선)가 나누는 인생의 깊이와 유머가 있는 황혼의 사랑도 웃음과 함께 미소를 자아내게 하는 부분.


송윤아는 최근 인터뷰에서 "30대를 훌쩍 넘기면서 사랑을 표현하는 감정이 굉장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내 가슴이 움직이는 대로 내가 느끼는 대로 연기했다"면서 "남들은 연수가 심심할 수 있지만 내 자신은 매순간 절절했다"고 고백했다.


30대 여배우의 이상적인 모습에 한 걸음 다가선 송윤아와 눈에서 힘을 뺀 설경구의 사랑 연기는 관객의 공감대를 얻기에 충분히 매력적이다.


영화에서 열연한 이휘향, 장항선 등 중견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1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서울=연합뉴스) 홍성록 기자 sungl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