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봉 < 중앙대 교수·경제학 > 정부는 내년 경제가 본격적인 회복세로 돌아 5% 정도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몇 년간 경기가 침체됐던 만큼 언젠가 풀릴 수밖에 없고,실상 수출증대와 주가상승의 효과가 이제 내수확산으로 이어질 때도 됐다. 아무튼 하염없이 기다리던 경기회복의 소식이니 우리는 그 의미를 잘 이해해 성장의 불씨로 살려나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정부고위자로부터 이제야 참여정부의 정책기조가 열매를 맺는 양 "무역 5000억달러나 주가지수 1300포인트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인가" 호령하는 말을 듣게 되니 참으로 놀랍다. 마치 "까마귀가 뜨자 민주화가 됐다"는 이야기같이 앞뒤를 이을 수 없는 말이다. 이처럼 엉뚱하게 득의양양(得意揚揚)하는 정부라면,향후 이 정부에서 어떤 자정(自淨)기능을 바랄 수 있겠는가. 우리 정부에 우선 필요한 것은 경제적 사고능력이다. 먼저 내년 5% 성장의 의미를 보자.이것은 참여정부의 금과옥조인 양극화 해소정책이 주효해서 서민소비증대를 일으켜 일어나는 경기가 아니다. 참여정부 집권 2년간 한국경제가 보인 긍정적 지표는 오직 수출증대뿐이다. 이것은 이른바 '30년래의 호황기'라는 세계경제의 번영 때문이고, 이 기간에 미국 중국 일본 대만 등은 경제성장률을 2001∼2002 대비 연평균 2∼4%포인트 상승시켰다. 그러나 한국은 기록적 수출증대에도 불구하고 국내소비와 투자가 극도로 침체돼 오히려 1.5%포인트나 하락했다. 내년 5% 성장은 눌릴대로 눌린 내수경기의 내재적 압력이 부상(浮上)시키는 '기술적 반등'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며,그 힘은 그간 축적된 수출의 소득확산효과가 제공하는 것이다. 수출이 증가하는 데 대해 참여정부는 호언할 이유가 전혀 없다. 당국은 오히려 세계시장에 나서면 펄펄 나는 우리기업을 왜 국내에서는 투자도 안하고 시장도 못 찾을 신세로 만들었는지 생각해야한다. 역설적으로 정치 경제 기타 국내기업환경이 너무 삭막해 우리기업들을 수출시장으로 몰아냈다는 말이 되니,구태여 찾자면 이것이 정권당국의 공로가 될 것이다. 유가증권시장이 작금 기록적 호황을 누리고 이에 따른 자산효과가 경기상승에 도움이 됨은 사실이다. 국내 정치ㆍ경제의 불안으로 오랫동안 저평가돼 왔던 주식시장은 금년부터 기관과 개인의 뭉칫돈이 몰려들며 급속히 재평가되는 중이다. 참여정부 아래 투자와 소비가 저조해 이자율은 낮아졌으며,때문에 주식보유는 보다 매력적 투자수단이 되고 있다. 또한 소비하지 않는 중산층,예산제약 없는 정부지출,재투자되지 않는 기업유보금,명퇴자의 퇴직금,풀리는 보상금 따위가 시중부동자금을 계속 늘리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오르는 주가지수이니 정권이 원한다면 그 공(功)을 자랑할 수 있다. 그러나 강력한 경제활동의 지지 없이 불경기와 부동자금으로 불을 때는 증시활황과 경기부양이 얼마나 실속 없고 불안한 것인가. 참여정부의 '시대정신'은 정부가 나서서 기득권 위주의 국가기본구조를 뒤바꾸고 새로운 분배-성장의 틀을 짜는 것이다. 그 맥락 아래 과거사 정리,국가기구 확대,공무원 증원,고용지원,사회보장 확대,행정수도와 공기업 이전,교육평준화,사학과 신문관계법 개정,반미 반시장정서 확대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거대한 정부지출로 예산적자는 매년 늘고 국가채무도 무서운 속도로 늘어났다. 성장-분배의 논란과 이념-이익관계의 갈등이 계속됐다. 정부가 5% 성장을 이제 고통의 과정이 청산되고 국민이 체감하는 효과가 나타나는 증좌로 받아들인다면 그야말로 기막힌 착각이 아닐수 없다. 착각은 국민을 향한 강변과 선전을 낳고 정권의 시대정신을 대놓고 추진할 무기로 활용될 것 아닌가. 2006년 희망찬 새해를 준비하는 국민에게 정말로 존재하지 말아야 할 악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