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고를 꼭 사고 싶은데 와이프한테 혼날까봐… 허허."


지난 7월 부임한 델핀 콜로메 주한 스페인 대사(59)는 요즘 한국 전통음악에 푹 빠져 있다.


한 국악 연주회에서 거문고 연주를 듣고 곧바로 현장에서 직접 연주해 보겠다고 졸랐을 정도다.


이미 4대의 피아노를 소유한 그는 "피리처럼 조그만 악기를 좋아했더라면 집이 좁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핀잔을 주는 부인(엘레나) 눈치 탓에 발길을 돌려야 했지만 "몰래라도 구입할 작정"이라며 특유의 너털웃음을 지었다


콜로메 대사는 국제 외교가에서 30년간 잔뼈가 굵어진 외교관이다.


한국을 포함,노르웨이 멕시코 불가리아 등 10여개 국을 거쳤고 싱가포르에서는 유럽·아시아재단 사무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유명한 것은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이다.


특히 피아노 연주와 작곡,지휘 실력은 이미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섰다.


지금까지 작곡한 교향곡과 협주곡만도 60여곡.1년에 10여차례 이상 각국의 유명 오케스트라를 직접 지휘하곤 한다.


한국에 온 이후부터는 거문고 연주곡 편곡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음악광인 그가 직업 외교관이 된 것은 순전히 아버지 때문이었다.


"밥굶기 딱이라는 말에 방향을 바꿨지만 음악을 버릴 수는 없었다"는 그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법대에서 법학과 국제정치학을 공부하는 동안에도 국립음악원(9년 과정)을 수료할 만큼 음악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콜로메 대사의 재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미학 무용 전쟁사(史) 등의 분야에서 이미 여러 권의 전문 서적을 펴냈을 만큼 다방면에 지식이 깊다.


실제 미학 무용 철학 등 3개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땄다.


스페인 일간지와 무용평론 월간지의 고정 칼럼니스트일 정도로 문재(文才)까지 과시하고 있는 그는 외무고시에 합격하기 전 6년간은 개업 변호사 생활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실제 그의 별명은 우리말로 '팔방미인'쯤 되는 '르네상스 맨'이다.


요즘엔 여기에 '문화 게릴라'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남들 골프 칠 때 글 쓰거나 책을 봐요.


아침 6시부터 두 시간씩은 꼬박꼬박 작곡을 하죠.그게 1년이면 800시간 정도 되는데 학위 과정 수료에 맞먹는 엄청난 시간입니다."


다재다능의 비결을 꾸준한 공부라고 꼽은 그는 "비행기 탑승 시간도 훌륭한 학습 시간"이라며 "공항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 비행기를 같이 타는 것이 가장 공포스런 일"이라고 농담을 했다.


콜로메 대사는 요즘 스페인과 한국을 오가는 바쁜 와중에도 비행기 안에서 악보를 익히는 등 다시 지휘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다음 달 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가정폭력 근절 기금 마련 자선음악회'에 객원 지휘자로 출연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자선 음악회로 데뷔하는 셈이다.


한국필립모리스의 후원으로 마련된 자선 음악회에서 콜로메 대사는 사라사테의 바이올린 협주곡 '집시의 멜로디'와 러시아 작곡가 카샤투리안의 '왈츠' 등 2곡을 지휘한다.


평소 친분이 있던 서울팝스오케스트라 하성호 단장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인 것.


그는 "소외당하고 있는 가정폭력 피해자를 돕기 위해 자선 음악회를 마련했다는 얘기를 듣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콜로메 대사는 그러나 한국과 스페인의 정치·외교 관계에 대해 "만족스럽다"고 평하면서도 통상 문제로 화제가 흐르자 약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유는 한국산 자동차가 너무 잘 팔려서란다.


한국의 대 스페인 수출을 100으로 치면 스페인의 대 한국 수출은 13밖에 안 될 정도로 무역 적자가 심각하다고 소개한 그는 그러면서도 "내년에 노무현 대통령이 경제인들과 함께 스페인을 방문할 예정인데 그러면 스페인에도 좋은 기회가 생길 것 같다"며 외교관으로서의 은근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