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3녀 윤형씨가 미국 유학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비보는 유독 자식을 먼저 보내는 일이 많았던 재벌그룹 총수들의 불행한 가족사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도 못할 개인적 비극을 맞은 재벌 총수들 가운데는 슬픔을 가슴에 묻고 오히려 업무에 더욱 매진함으로써 아픔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 온 사례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경우가 고(故) 정주영 전(前) 현대그룹 명예회장. 정 전 명예회장은 장남 몽필씨와 4남 몽우씨를 먼저 떠나보내는 슬픔을 겪었으나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무안할 정도로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1982년 당시 인천제철 사장이었던 몽필씨가 교통사고 숨진 데 이어 그의 아내이자 자신의 며느리인 이양자씨마저 숨을 거둔 뒤에도 정 전 명예회장이 슬픔을 내색하지 않고 평상시처럼 업무에 임했다는 것은 현대그룹에 널리 전해져 오는 이야기다. 정 전 명예회장은 다만 아끼던 장남의 자녀들, 즉 자신의 손자들에게는 스스로 아버지 노릇을 하기 위해 각별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1990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몽우씨는 아버지로부터 경영능력을 인정받지 못해 후계 구도에서 멀어진 점이 평소 앓고 있던 우울증을 악화시켜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 아니냐는 추측까지 제기돼 아버지인 정 전 명예회장으로서는 슬픔과 함께 자책감을 느낄만도 했지만 자식의 죽음도 그의 왕성한 경영의욕을 꺾지는 못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도 1990년 미국 유학중이던 장남 선재씨를 교통사고로 잃었다. 김 회장은 아들이 사치를 부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 자동차도 값싼 소형차를 구입토록 했는데 사고당시 차량이 좀더 튼튼한 대형차였더라면 죽음은 면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회한을 품고 있었으나 이를 내색하지는 않았다고 옛 대우그룹 관계자들은 전했다. 옛 대우그룹의 한 관계자는 "김 회장이 선재씨의 장례식 후 하루 회사를 나오지 않았는데 이것이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가 회사를 결근한 유일한 사례였다"면서 "그러나 그 뒤로는 대우조선 경영정상화 등 업무에 더욱 열중해 일로써 슬픔을 잊으려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LG그룹의 구본무 회장도 부회장 시절이던 1994년 고등학생이던 외아들 원모씨를 불의의 사고로 잃었다. LG에서는 지금도 이 사건을 입에 올리는 것을 금기로 여길 정도로 구 회장의 상심은 컸지만 아들의 사망이 구 회장의 경영의욕을 꺾지는 못했다. 구 회장은 이듬해 부친 구자경씨로부터 그룹회장직을 물려받아 새 경영체제를 무난히 정착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처럼 자식을 먼저 보낸 재벌 총수들이 슬픔에 잠기기보다는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경영에 나서는 모습을 보인 데 대해 재계 관계자들은 "수천, 수만명의 종업원들과 그 가족의 운명을 걸머진 기업 총수들의 무거운 책임감과 남다른 의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와 같은 사례들을 볼 때 삼성의 이 회장 역시 곧 슬픔을 극복하고 경영활동에 복귀하게 될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연합뉴스) cwhy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