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영 성우그룹 명예회장이 13일 별세함에 따라 `영'(永)자 항렬의 현대가 창업 1세대 가운데 절반 이상이 세상을 떠났다. 6명의 남자 형제 가운데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과 정상영 KCC 명예회장 등 2명만 생존해 있으며 정인영 명예회장은 이미 수년전에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상태여서 현대가의 `1세 경영'시대는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 최근 몇년간 경영권 승계 작업이 속도를 내면서 옛 현대그룹의 각 계열사별로 이미 `몽', `선'자 2.3세의 후계구도 구축도 사실상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다. ◆`영'자 항렬 1세대, 절반 넘게 타계 현대가 1세 6남1녀 중 아직까지 생존해 있는 것은 정인영 명예회장, 정상영 명예회장 등 남자 형제 2명과 딸인 정희영 여사 등 3명 뿐으로 이 중 아직 경영에 관여하고 있는 경우는 막내 정상영 명예회장 이 유일하다. 생전에 `왕회장'으로 불렸던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6남2녀의 장남으로 여동생 한 명은 어린시절 세상을 떠났다. 형제 중에서는 기자 출신으로,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생전에 가장 아꼈던 것으 로 알려졌던 5남 신영(1931-62)씨가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로 1962년 독일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가장 먼저 운명을 달리했다. 이후 정주영 명예회장은 신영씨의 유복자인 조카 몽혁씨에게 현대정유와 현대석 유화학을 맡겼으며 몽혁씨는 현재 에이치에비뉴 앤 컴퍼니 회장을 맡고 있다. 80세를 넘긴 후에도 타고난 건강을 자랑하며 왕성한 활동을 벌였던 `왕회장'은 2001년 3월21일 향년 86세의 나이로 타계, 하남 창우리 선영에 `영면'했다. 1946년 현대자동차, 50년 현대건설을 차례로 설립하면서 기업인의 길에 뛰어든 그는 `현대'를 재계 서열 1위로 끌어올리면서 특유의 도전정신과 뚝심, 추진력으로 해방 이후 한국 경제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해왔고 대북관계에도 일등공신이었다. 이번에 타계한 3남 정순영 명예회장은 1950년 현대건설에 합류, 성우그룹의 모기업인 현대시멘트 회장을 비롯, 현대종합금속, 성우종합건설, 성우정공 회장 등을 지냈으며 2000년 2세에 대한 경영권 승계작업을 마무리, 일선에서 물러났다. 1970년 현대건설 시멘트 사업 부문이 현대시멘트로 독립했고 관련 계열사들이 88년 현대그룹에서 완전히 분가, 일찌감치 독립했다. 포니 수출 신화의 장본인인 4남 `포니정'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은 올해 5월 폐렴 증세로 운명을 달리했다. 그는 1957년 현대건설로 입사, 67년 초대 현대차 사장에 취임한 후 32년간 자동차 외길 인생을 걸어오는 동안 자동차 수출 신화를 일궈낸 한국 자동차 역사의 `신화'로 불리며 자동차 부문 승계 가능성이 유력하게 점쳐져왔다. 그러나 갈등을 빚어온 장조카 정몽구 회장에게 자동차 부문 경영권을 넘기는 비운을 겪었으며 99년부터는 아들 정몽규 회장과 함께 현대산업개발로 자리를 옮겼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바로 밑 동생인 2남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은 1953년 현대건설에 입사, 형과 함께 현대를 일궜으나 1977년 일찌감치 한라의 전신인 현대양 행으로 독립했으며 이 과정에서 형 정주영 명예회장과 숱한 갈등을 빚었다. 1997년말 외환위기와 함께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자 잠시 현대로부터 자금지원을 받기도 했으나 일순간 지원이 중단돼 재계에서는 형제간의 냉정한 등돌림을 안타깝 게 바라보기도 했다. 여동생 정희영 여사는 김영주 한국 프랜지 명예회장이 남편이며 슬하에 장남 김 윤수 한국프랜지 회장, 김근수 울산화학 회장 등 2남을 두고 있다. 김영주 명예회장은 현대가 내에서 두루두루 원만한 관계를 유지, 현정은 현대그 룹 회장과 정상영 KCC 명예회장간 경영권 다툼에서 현대가 안팎에서 한 때 중재역으 로 지목되기도 했으나 건강상 등의 이유로 고사한 것으로 전해졌었다. 6남으로 막내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은 2003년 고 정몽헌 현대 회장의 갑작스러 운 사망 이후 불거진 조카며느리 현정은 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의 한 가운데 있었다. 그는 한 때 `상중에 조카 그룹을 빼앗으려 한다'는 세간의 비난여론에도 직면해 있었으나 이후 정씨 일가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한 조치였다는 동정론이 일기도 했다. 한편 정인영 명예회장은 부인 김월계 여사가 타계한 지난해 11월 빈소에 휠체어 를 탄 채 쇠약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등 고령으로 이미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준 뒤 별 활동이 없는 상태다. 한라건설측은 "정인영 명예회장은 올해 86세로 고령이나 종종 잠실 한라건설 사무실에 나와 일을 챙기는 등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 현대가 2.3세 경영 사실상 일단락 왕회장의 장남격인 정몽구 회장은 올해 2월 외아들 정의선 부(35)사장과 90년 작고한 동생 몽우씨(4남)의 아들인 조카 정일선(35) BNG 스틸(옛 삼미특수강) 부사장, 셋째 사위인 신성재(37) 현대하이스코 부사장을 나란히 사장으로 승진, 오너 3세 경영 구도를 본격화했다. 장자 몽필씨가 지난 1982년 사고로 사망하면서 정몽구 회장이 사실상 현대가의 정통성을 잇는 맏형으로 인정받고 있다. 정의선 사장은 기아차의 1.01%와 건설계열사인 엠코의 25.0%, 비상장 물류 계열사인 글로비스의 39.85% 지분을 각각 소유하고 있으며 현재 정 사장이 글로비스의 상장을 통해 유입되는 자금으로 기아차나 현대차, 현대모비스 등의 지분을 확대, 경영권 승계작업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일부 제기되고 있어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이어 맏딸 성이씨가 현대.기아차의 자체 광고회사로 올해 상반기 출범한 이노 션의 최대주주이자 이사로 등재됨에 따라 3녀1남 모두가 직접 또는 배우자를 통해 경영에 발을 담그게 됐다. 둘째 사위는 정태영 형대카드.캐피탈 사장이다. 3남 정몽근 현대백화점 회장도 지난해말 장남 정지선 부회장과 정교선 이사에게 보유 지분 상당부분을 증여하고 부장이던 교선씨를 이사로 승격시키는 등 후계구도 구축을 사실상 일단락지었다. 지난해 3월 지주회사격인 현대엘리베이터 주주총회에서의 `압승'으로 경영권을 확보하게 된 고 정몽헌 회장의 부인 현정은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의 경우 현회장 체제가 안정궤도에 진입한 가운데 맏딸 지이(28)씨가 현대상선 재정부로 입사, 올 초 대리에서 6개월만에 과장으로 진급하는 등 경영수업을 밟아나가고 있다. 지이씨는 올해 7월 설립된 현대그룹의 IT 자회사 `현대 U&I' 등기이사로 선임됐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에도 어머니 현회장과 함께 참여하는 등 현회장의 `그림자'로 불리고 있다. 한편 정상영 KCC 명예회장도 지난해 몽진.몽익.몽열씨 등 세 아들에게 각각 377 억원과 370억원, 234억원 등 모두 981억원에 해당하는 KCC 주식 77만3천300주를 분 산 증여했고 올 2월 장남 정몽진 회장, 김춘기 사장과 함께 2남인 정몽익(43) 부사 장을 각자 대표이사로 선임, 2세 경영을 마무리했다. 고 정세영 명예회장도 별세 직전인 올해 5월 중순 보유지분 전량을 외아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등 자녀 등에게 장내 처분, 사실상 기업 상속 절차를 마쳤으며 기업 경영은 이미 오래전부터 아들 정회장이 주도해왔다. 정몽준 의원은 현대중공업 지분 10.8%를 보유하고 있는 대주주나 아직 자녀들이 어려 후계구도 논의는 본격화되지 않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송수경 기자 hanksong@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