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 내가 하는 일은 모두 귀하고 아름답다' 조영주(49) KTF 사장이 젊었을 때 거울에 붙여놓고 항상 보았다는 경구다. 본인의 설명으로는 '인생 성공'을 위해 신혼 초에 매일 되뇌었다는 경구지만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한, 그러면서 'CEO 조영주'가 어떤 사람인지를 미루어 짐작케 해주고 있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그가 인터뷰에서 CEO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다름아닌 '휴머니즘'을 강조한 것은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7월 초 2천500명이 승선한 KTF호의 선장이 된 조 사장의 얼굴에는 무뚝뚝함과 온화함이 혼재돼 있다. 그리고 말투에는 '어눌한 사투리'가 많다. 흔히 사투리도 잘만 하면 매력이 되지만 조 사장의 경상도 사투리는 세련이나 매력과는 아예 거리가 멀다. 통신업계에 알려진 조 사장의 별명은 '조배려'다. 우선 자신을 낮추고 남의 말을 경청하는 게 몸에 익숙한 사람이다. '조배려'는 견해가 다른 사람의 의견마저도 배려하고 포용하는 스타일 때문에 생긴 애칭이다. ◇ 진솔함 묻어나는 외유내강형 CEO 조 사장의 첫 인상은 무뚝뚝함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부드러움과 진솔함이 배어 나온다. 그야말로 외유내강형이다. "직원들을 접할 기회도 적었고 사실 제가 아직 사투리를 좀 쓰니 많은 직원들은 아직 저를 친근하게 느끼지 못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제가 친근하게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조 사장은 취임 이후 가장 먼저 지역본부를 돌면서 직원들과 만났다. 그는 한 지역본부를 방문했을 때 임원 중 한사람이 '사장 순시'라는 표현을 써서 즉석에서 순시가 아니라 "친구하러 왔다"고 정정했다고 한다. 조 사장의 부드러움은 뚝심 있는 업무 추진력으로 이어진다. 정책을 결정하기 전까지 많은 의견을 듣지만 한번 확정한 정책은 강한 리더십과 특유의 뚝심으로 밀어 부치는 스타일이다. 지난 2000년 IMT-2000 사업권 신청에 앞서 동기식과 비동기식을 놓고 회사에서의견이 팽팽했을 때 비동기식이 장기적으로 유리하다는 신념을 가진 조 사장이 임직원들을 설득, 결국 비동기식 WCDMA로 사업권을 획득한 일은 유명한 일화다. "그 당시 비동기식을 하겠다는 주된 이유가 이 기술이 국제적으로 표준화가 많이 돼 있어 규모의 경제면에서 유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스템 장비는 물론 나중에 고객들이 사용할 단말기도 값싸게 이용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었습니다" 조 사장은 온화한 인상과 달리 운동으로 다져진 강인한 체력을 가졌다. "체질적으로 굉장히 피가 끓었는지 운동을 하고 에너지를 소비해야 공부가 되는 그런 체질이었던 것 같아요. 맨 정신으로 앉아 있으면 좀이 쑤셔 공부가 안 되더라구요" 스스로 골프를 과학적인 운동이라고 평가하는 그의 골프 핸디캡은 10 정도이며 농구, 테니스, 배구, 탁구, 볼링도 상당한 실력을 갖췄다. 초등학교때 등하교길에 매일 4㎞를 뛰어다니면서 다져진 체력이 밑바탕이 된 듯했다. ◇ CEO의 최대 덕목은 '열린 마음' "저는 그냥 과학도가 되고 싶었고 사실 산업 엔지니어보다 연구원이 되고 싶었습니다. 누구나 CEO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었죠." 조 사장의 학창시절 꿈은 연구원이었다. 그에게 IT분야 CEO가 갖춰야 할 리더십에 대해 물어봤다. "IT산업은 워낙 급변하고 다이내믹하게 돌아가기 때문에 CEO가 혼자서 뭐든 결정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경영자는 항상 열린 마음으로 많은 의견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상태가 돼야 합니다. 대신 내부적으로 다양한 의견수렴을 통해 의사결정이 되면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은 제 몫입니다" 그는 CEO를 꿈꾸는 인생 후배들에게 '폭넓은 소양', '휴머니즘', '적극성' 세가지를 강조했다. "CEO를 하려면 기본적으로 편협된 엔지니어가 되지 말고 폭넓은 인간상을 만들기 위해서 문학, 역사, 철학을 많이 익히라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일을 두려워하지 말고 이 일로 내가 성장할 수 있다고 맘을 먹고 일을 처리하면 그만큼 자신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일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처리했던 것이 오늘의 저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 "'섬김' 경영으로 1등 회사될 것" 남중수 전임 KTF 사장은 재직시 자신을 '고객만족 전문경영인(CSO : Customer Satisfaction Officer)'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조 사장은 자신을 '고객섬김 전문경영인(CSO : Chief Servant Officer)'이라고 칭한다. '가입자수 1등'보다는 '서비스 1등' 자리를 놓고 SK텔레콤과 경쟁을 하겠다는 의미다. "기본적으로 CEO의 역할은 기업의 3대 주인인 주주, 고객, 직원들에 대한 하나의 Servant라고 생각합니다." 조 사장의 좌우명은 '경천애인(敬天愛人)'이다. 그는 자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을 '열린 마음'으로 항상 배려하고 '섬김'의 자세로 대한다. "직원들이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을 갖고 고객을 향했을 때 최상의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스트레스는 제가 다 받아 챙기고 직원들한테는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 ◇ 신성장 동력은 '무선데이터'와 '컨버전스' 현재 이동통신 시장은 가입자 측면에서 포화상태다. 'KTF가 신대륙을 찾아 떠나는 산타마리호가 되자'고 호소한 그의 취임사에는 이 같은 고민의 흔적이 역력하다. 신성장동력을 묻는 질문에 "앞으로 무선 데이터 시장을 더 어떻게 키우느냐, 영상, 음악, 게임 등의 콘텐츠를 잘 융합해서 무선데이터로 고객들한테 전달할 수 있느냐"가 성장의 관건이라고 그는 대답한다. "내년부터 HSDPA(초고속데이터전송기술)를 바탕으로 유무선 통합서비스도 하고 또 KTF 특유의 개방된 플랫폼을 활용해서 새로운 사업 모델을 계속 찾아나갈 겁니다" 조 사장은 현재 이통서비스 가입률이 80%에 달하면서 마케팅 경쟁이 치열해지는 현재를 위기로 진단했다. 그러나 "휴대전화가 단순한 음성 통화를 할 수 있는 수단을 넘어서 신분증 혹은 카드 기능 등을 구현할 수 있는 개인 비서 형태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많은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고 낙관했다. KT와의 합병론에 대해서는 시장환경, 정부 규제, 주주들의 이해관계, 회사의 사업과 재무상황 등 많은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만큼 "현재로서는 합병을 논의할 단계가 아니며 현재 KT와 논의중이지도 않다"고 잘라 말했다. 휴대전화 요금 인하의 경우 "매년 요금인하 요구가 되풀이되는 것은 선발사업자의 과다한 초과 이윤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새로운 기술과 네트워크에 투자를 하려면 많은 비용이 드는데 현재 이익이 났다고 해서 바로 요금인하 압력이 들어오면 새로운 세대를 준비하는 비용이 줄어든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 존경하는 CEO는 고 유일한 박사 조 사장은 고등학교 때 유한양행 창업주인 유일한 박사가 작고하면서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봉사를 깨닫게 하는 소중한 기회였던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삼성전자 윤종용 부사장을 부러워한다. 그는 윤 부회장에 대해 "창업자가 아닌 엔지니어로서 삼정전기, 삼성전관, 삼성전자 등을 거치면서 IMF와 같은 어려운 시기에도 회사를 성장시킨 분"이라면서 "급변하는 IT업계에서 16년간 CEO로 장수하고 있는 사실도 부럽다"고 웃으며 말했다. 학계에서는 임지순 서울대 교수와 황우석 교수를 꼽았다. "나노 기술을 연구하는 임 교수는 정말로 뛰어난 과학자지만 굉장히 겸손하고 사실 자기 표현을 잘 못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연구와 실적을 높이고 있는 분입니다." "황 교수는 생명과학분야 사람답지 않게 말씀을 잘 하시고, 아마 제가 보기에는 사회과학이나 인문과학쪽에 계시는 분보다 더 말씀을 잘 하시지 않나 하는 느낌이 듭니다." 친하게 지내는 CEO는 고향친구이자 중ㆍ고 동창생인 김재희 대한토지신탁 사장이다. ◇ KTF는 이런 회사 "KTF는 사원 모두가 주인인 회사, 누구든지 자기가 뜻을 펴서 CEO가 돼 동반 성장할 수 있는 회사, 일에 대한 열정과 능력이 있다면 언제든지 클 수 있는 회사입니다" 조 사장은 KT와 KTF의 차이를 "KTF가 KT보다는 역동적"이라는 비유로 요약한다. 양사의 뿌리는 같지만 KTF는 한솔엠닷컴과 KT 아이컴과의 합병과 모바일이라는 사업환경 덕택에 젊어지고 유연해졌다는 설명이다. 직원들에 대해서도 능력과 열정을 주문한다. "직원들을 보면 어떤 일을 관리자가 시켰을 때 능동적으로 잘하는 직원들, 일에 대한 프로의식을 가지고 해 오는 직원이 가장 예쁘죠. 사실 제일 좋은 건 능력이 있고 열정이 겸비되면 좋은데 둘 다 없으면 갑갑한 경우라 볼 수 있지요." 신입사원 채용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이동통신에 대한 창의성과 '끼'"라고 단언한다. 그는 "KT 부장 재직시 자신이 업무경고를 가장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후배 사원들에게는 "결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서슴없이 조언한다. "어려운 일에 대해 주저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일하면서 이 일을 통해 내가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세요. 실수, 실패학이란 말이 있듯이 실패하지 않고서는 성장을 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조 사장은 2002년 6월 한일 월드컵때 3세대 이동통신기술인 IMT-2000(WCDMA :광대역코드분할다중접속)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었다. 당시 KT 아이컴을 맡아 IMT-2000 사업을 준비하던 중 월드컵 개막식에서 세계 최초로 한일간 글로벌 화상로밍 통화를 성공시켜 한국의 IT 발전상을 세계에 보여주었던 것. "한국의 전통문화는 올림픽때 이미 보여줘 재탕하면 의미가 약한 것 같아 월드컵때는 IT기술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시험을 잘 보기 위해 날을 새며 공부하면 실력이 늘듯이 그런 과정을 몇달간 거친 것이 우리의 3세대 기술을 6개월에서 1년 정도 앞당겼다고 봅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그는 KTF의 CEO로서 다시 한번 누군가를 놀라게 할 준비를 하고 있다. 3년전에는 세계를 놀라게 했지만 이번에는 고객과 직원, 주주다. (서울=연합뉴스) 김용수 국기헌 기자 yskim@yna.co.kr penpia2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