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개봉해 객석을 눈물바다로 만들고 있는 멜로영화 '너는 내 운명'을 보고나면 새삼 주목하게 되는 인물이 있다. 전도연의 전 남편인 알코올 중독자 천수 역으로 출연한 정유석(33)이다. 전도연ㆍ황정민 주연의 멜로영화에서 다른 배우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란 여간해서는 쉽지 않은 일. 그러나 정유석은 슬프고도 악독한 캐릭터와 찰떡 궁합을 맞춰 관객의 뇌리에 인상을 심는 데 성공했다. 영화의 슬픔과 감동을 더욱 도드라지게 하며 스크린에 확실히 방점을 찍은 것. "천수는 천성적으로는 착한 인물입니다. 다만 술만 마시면 돌변하는 것이 문제지요. 그래서 연민보다는 슬프게 느껴졌습니다." 극중 은하(전도연 분)는 술 취하면 짐승이 되는 그를 피해 시골로 도망간다. 그러나 천수는 비상한 '수사력'을 동원, 은하가 어디에 있든 찾아낸다. 그는 멀쩡할 때는 은하에게 같이 살자고 애원하면서도 술이 들어가면 폭력과 못된 짓을 일삼는다. 이 때문에 반듯하고 선한 이미지의 정유석은 극중에서 눈이 약간 찌그러지는 등 평상시와는 좀 다른 느낌으로 다가선다. 선한 이미지이기 때문에 그의 돌변은 더욱 충격적이다. "촬영 전날 술을 잔뜩 마셔 얼굴이 붓게 하기도 했어요. 또 분장을 통해 알코올 중독자의 느낌을 살렸습니다. 사실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천수가 싫었지요. 하지만 제가 제대로 해주지 않으면 영화의 갈등이 살아나지 않거든요. 저를 아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는 심정으로 연기했습니다. 제 변신을 보고 재미있어 해주길 바라지요." 역할이 마뜩지 않았을 수는 있지만 이러한 센 느낌의 캐릭터는 연기자로서 희열을 안겨주기도 한다. "이 시점에서 이러한 역할도 잘 하는 배우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한번에 두 가지 캐릭터를 연기하기는 이번이 처음인데 TV 드라마와 달리 영화이다보니 연기와 표현의 폭이 넓어 좋았습니다." 정유석은 1988년 KBS 특채 탤런트로 출발한 '오래된' 탤런트다. 출발 때는 하이틴 스타로 TV와 드라마를 오가며 부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긴 세월이 흐르면서는 오히려 처음에 어필했던 선하고 반듯한 이미지가 성장의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 2003년 '올인'에서 난생 처음 악역을 맡으면서 그는 다시한번 관계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더불어 시청자에게는 그가 이전부터 쭉 악역을 해왔던 것마냥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확실히 이미지에 반하는 악역을 맡아야 강한 인상을 심어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1차원적인 악역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앞으로도 캐릭터 선택에 신중을 기할 겁니다." 단적으로 추석에 방송된 조선과학수사대를 그린 MBC 드라마 '별순검' 같은 경우가 그의 갈증을 해소해줄 좋은 기회. 그는 이 드라마에서 강한 이미지의 조선 수사관을 연기하며 호평을 받았다. 얼마 전 막을 내린 MBC 아침 드라마 '김약국의 딸들'에서 주연을 맡는 등 TV에서는 활발히 활동해온 정유석은 "'너는 내 운명'을 시작으로 영화를 통해 좀더 폭넓은 연기에 도전하고 싶다"면서 "후퇴하지 않는 연기자가 되고자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pret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