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성 < 휴잇어소시어츠 수석컨설턴트 > 정부가 발표한 2006년 세제개편안의 9월 중 처리가 진통을 겪을 전망이다. 신용카드 사용분의 소득공제율 축소와 액화천연가스 등의 세율인상을 기본 골자로 하고 있는 이번 안들은 재정적자 기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세수 확대책으로 제시됐지만,국민 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퇴직연금제도를 통한 사외적립을 유도하기 위해 퇴직연금 불입액에 대한 소득공제를 허용하는 한편 퇴직급여충당금의 손비인정 한도를 대폭 축소키로 하는 '고령화 대응방안'의 중요성이 간과돼서는 안 될 것이다. 충분한 세제혜택이 주어지는 퇴직연금은 우리의 노후 생활을 위한 가장 중요한 재원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우리의 자본시장을 질적 양적으로 더욱 성숙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등의 공적 연금제도와 달리 퇴직연금제도는 점점 다양해지는 근로자들과 고용주들의 선호를 만족시킬 수 있는 노령화사회의 안전장치로 인식되고 있다. 호주와 스위스는 수년 전 민간에서 운영되는 의무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하고 공적 연금의 역할을 축소해 왔다. 덴마크와 네덜란드는 집단협약을 통한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했으며,영국과 일본에서는 일정 기준 이상의 퇴직연금을 지급하는 고용주들을 공적 연금의 적용대상으로부터 제외시켜 주는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이들 제도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매우 긍정적이다. 세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퇴직연금으로 인해 1인당 저축률이 40% 증가했으며,스위스에서는 국민 총저축이 80%나 증가했다고 한다. 퇴직연금기금은 OECD의 많은 국가들에서 자본시장의 축을 이루고 있다. 영국의 경우 퇴직연금기금의 3분의 2는 주식시장에 유입되고 있으며 영국 국내 기업들 주식의 약 절반 정도를 소유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퇴직연금기금은 국내 기업 주식의 4분의 1을 소유하고 있으며,국내 기업이 발행한 채권의 절반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 퇴직연금제도의 성공에 기여한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물론 조세혜택이다. MIT대학 제임스 포터바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DC형 연금의 일종인 401k형태의 연금은 세제혜택으로 인해 주식 채권 등 다른 금융 자산에 비해 가장 큰 세후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 노후생활에 대비한 저축이 필요하다면 퇴직연금제도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몇 가지 점들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우선 DB형의 경우 적정 적립금의 수준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연금운용과 관련된 매우 복잡하고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DC형 연금은 근로자들이 투자에 대해 직접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위험이 있다. 이번에 확정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안은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주식에 대한 직접투자를 제한하고 있고,간접적인 투자라 하더라도 40%로 그 한도를 두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에서 도입되는 DC형 연금은 포트폴리오에 대한 규제가 가장 적은 미국이나 영국형 DC와는 매우 상반되는 형태다. 그러나 포트폴리오에 대한 규제는 결국 포트폴리오 구성의 다양성을 저해하고,수익률 하락의 결과를 초래할 소지가 있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연금제도의 가장 바람직한 운영방향으로 많은 전문가들이 적립에 대한 엄격한 규제와 포트폴리오 구성의 자율성 확립을 꼽고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퇴직연금제도의 효율적인 정착을 위해 우리는 선진국들의 경험을 곱씹고 발전시켜야 한다. 수년간 퇴직금제도에서 연금제도로의 합리적 이전이 이루어진 이후에는 보다 미래지향적인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곧 확정될 조세혜택과 감독규정, 더 나아가 장기적으로는 수백조원대로 성장할 수 있는 퇴직연금 지배구조의 합리적 설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