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전경. 사진=뉴스1
서울 아파트 전경. 사진=뉴스1
물가가 최근 몇 년 새 큰 폭으로 오르고, 이에 따라 고금리 수준이 유지되자 30대 전세거주자의 피해가 막심했던 것으로 분석됐다. 물가 급등으로 전세보증금의 가치가 낮아진 가운데, 고금리로 대출 상환 부담은 커져서다. 고령층과 저소득층도 물가 상승으로 소비여력이 크게 훼손된 계층으로 분석됐다.

한국은행이 27일 공개한 '고물가와 소비:가계 소비 바스켓·금융자산에 따른 이질적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 4월까지 소비자물가 누적 상승률은 12.8%(연 3.8%)로 집계됐다. 2010년대(연 1.4%)에 비해 두배를 넘는 수치다.

고물가 영향으로 소비는 둔화세다. 민간 소비의 경우 올해 들어 다소 회복됐지만 여전히 2015∼2019년 추세를 크게 밑돌고 있다. 이는 물가 상승으로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금융자산의 실질가치도 떨어져 소비 여력을 제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의 분석 결과, 2020∼2023년 고령층과 저소득층이 체감하는 실효 물가 상승률은 각 16%, 15.5%로 청·장년층(14.3%)과 고소득층(14.2%)보다 높았다. 물가 상승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식료품 등 필수재의 소비 비중이 두 그룹에서 컸기 때문이다.

고령층의 경우 대체로 부채보다 금융자산을 많이 보유한 계층인 만큼, 물가 상승에 따른 자산 가치 하락 경로로도 부정적 영향을 받았다.

물가가 오르면 자산과 부채의 실질 가치가 줄어든다. 이 때문에 주요국에선 자산이 많은 고령층은 상황이 나빠지고, 부채가 많은 청년층은 나아지면서 부의 재분배가 이뤄지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이같은 경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전세제도 때문이다.

한은의 분석 결과 특히 30대 전세거주자의 피해가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보증금이라는 자산의 가치는 물가 상승으로 하락했고, 부채는 변동금리인 경우가 많아 고금리로 인한 이자부담이 커졌다는 것이다.

종합적으로 2021년부터 가파르게 오른 물가가 얼마나 소비를 위축시켰는지 정량적으로 분석하니 2021∼2022년 실질 구매력 축소가 약 4%포인트, 금융자산 실질 가치 훼손이 약 1%포인트씩 소비증가율을 낮췄다. 이 기간 누적 기준 소비 증가율(9.4%)을 고려할 때 물가 급등이 없었다면 소비가 14% 이상 늘 수도 있었다는 뜻이다.

정동재 한은 거시분석팀 과장은 "2021년 이후 물가가 민간 소비를 상당폭 둔화시킨 것으로 판단된다"며 "다만 물가 상승에 큰 영향을 받은 가계에서는 공적 이전소득 증가, 금리 상승에 따른 이자소득 증가 등이 물가의 부정적 영향을 다소 완화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고물가는 가계의 실질 구매력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취약층의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하는 부정적 재분배 효과도 있는 만큼 물가 안정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