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저출산·고령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재테크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통계청의 ‘2004년 출생·사망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작년 출산율(15∼49세인 가임여성 한 명당 평균 출생아수)은 1.16명으로 집계됐다.미국(2.04명)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수치다.올들어 사망자 수가 신생아 수를 웃돌아 충격에 빠진 일본(1.29명)보다도 낮은 출산율이다.


반면 노령화는 가속화되고 있다.우리나라는 이미 지난 2000년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7% 이상을 넘는 ‘고령화 사회’에 들어섰다.2018년에는 그 비율이 14%를 넘는 ‘고령사회’,2026년에는 20%를 웃도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할 것이라는 게 통계청 전망이다.



이 같은 추세로 가면 앞으로 20여년 후에는 인구의 5분의 1이 노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젊은이는 없고 노인만 있는 '늙은 나라'로 변모하고 있는 셈이다.


젊은 노동력이 줄어듦에 따라 성장 둔화가 불가피하다.


저출산·고령화가 지속되면 현재 5% 안팎인 잠재성장률이 2020년대에는 2%대,2030년대에는 1%대로 떨어질 것으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다보고 있다.


이런 가운데 평균수명은 갈수록 길어지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00년 75.87세였던 평균수명은 2005년 77.9세로, 2010년 78.78세로 높아져 2020년에는 80세를 넘어설 전망이다.


은퇴 연령을 60세로 잡아도 20년은 더 산다는 얘기다.


평균수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은퇴 이후 30~40년가량은 더 살 수 있다고 봐야 한다.


이제 노후대비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풍요로운 여생을 위한 준비는 아무리 빨라도 지나치지 않다.


이런 환경변화는 투자문화에도 변혁의 바람을 몰고 오고 있다.


저성장에 따른 저금리 기조와 고령화 환경 속에서 노후자금의 중요성을 인식한 사람들은 은행예금보다는 투자형 상품에 관심을 갖게 되고 단기보다는 장기화된 투자를 선택하고 있다.


변화의 조짐은 가계 포트폴리오의 변화에서 감지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계의 금융자산 가운데 주식이나 채권 등에 투자하는 증권자산은 지난 2003년 16.3%에서 지난해엔 17.7%로 상승세로 돌아선 데 이어 올 1·4분기에도 18.0%로 증가했다.


반면에 현금과 예금자산 비중은 2003년 60%대에서 지난해엔 57.9%,올 1·4분기에는 57.7%로 떨어졌다.


사회가 고령화되면서 점차 금융자산을 은행예금 등 안정자산보다는 증권 등 공격적인 투자처로 옮기고 있다는 방증이다.


특히 적립식 펀드의 돌풍은 이 같은 투자문화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7월 말 현재 적립식 펀드에 투자된 돈이 8조5000억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총 계좌 수는 323만개로 4.4가구 가운데 1가구꼴로 적립식 펀드에 가입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적립식 펀드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단연 저금리와 고령화다.


과거 우리나라 경제가 고도성장을 할 때 국내 금리는 두자릿수였다.


은행 예금도 충분히 재산 증식 수단이 될 수 있었다.


은행의 고금리 금융 상품을 제쳐 두고 위험 자산인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자연히 짧은 기간에 은행 예금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원했다.


그러나 저성장 추세를 타고 은행 금리는 최근 들어 물가상승률보다 낮은 3%대로 떨어지면서 재테크 수단으로서의 매력을 상실했다.


물가상승률을 뺀 세후 실질금리는 이미 마이너스로 떨어져 예금액을 늘릴수록 손해가 늘어난다.


초저금리가 고착화한 2003년 말을 기점으로 적립식 펀드 투자가 급증한 이유다.


또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일시적인 목돈 만들기에 집중된 과거 투자방식도 지금은 노후 대비와 자녀교육 및 결혼자금 마련 등 장기 플랜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으로 바뀌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적립식 펀드야말로 이 같은 장기 플랜을 세우는 데 제격인 상품이다.


적립식 펀드를 필두로 간접투자 방식이 인기를 끌면서 다양한 펀드가 등장, 국내 펀드의 수는 6500개를 넘어섰다.


거래소와 코스닥시장에 상장·등록된 주식수보다 4배 이상 많다.


펀드 종류도 주식형 채권형 혼합형 외에 부동산펀드 선박펀드 금펀드 기숙사펀드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개인들의 펀드 투자도 급증하면서 간접투자(펀드) 계좌 수는 지난 6월 말 현재 687만5000여개로 직접투자 계좌수(674만9000여개)를 추월했다.


보험시장에서도 위험보장에다 투자 기능까지 두루 갖춘 변액보험이 재산증식을 위한 경제적인 준비수단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올 12월부터 실시되는 퇴직연금제도는 고령화사회의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퇴직연금은 매월 일정액의 연금을 특정 금융회사에 10년 이상 적립하면 55세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제도로 기존의 퇴직금제도와 퇴직보험제에 비해 다양한 자산운용으로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퇴직연금은 향후 연간 40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금융시장의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고 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