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이 전후 일본에 잔류하게 된 한국인의 법적 지위 문제를 놓고도 한일협정이 체결된 1965년까지 장장 14년간 팽팽한 외교전을 벌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측이 약 60만명에 달하는 재일한인에게 특수한 법적지위와 처우를 부여할 것을 주장한 반면, 일본은 이들을 일반 외국인으로 취급, 다른 외국인과 마찬가지의 제한을 가하겠다고 맞섰기 때문이다. 양국은 이후 관련 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영주권을 부여할 수 있는 재일한인 자손의 범위와 시기, 그리고 퇴거를 강제할 수 있는 대상 문제를 놓고 힘겨루기를 계속했다. 종전 후 재일한인들의 지위는 너무 애매해 상당히 불안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종전후 일본을 통치한 미국 주도의 연합군총사령부(SCAP)는 점령 초기 재일 한인을 해방 국민으로 간주하다 1948년 6월부터 특수 지위의 국민으로 규정, 일본인도 아닌 특수한 지위에 처한 국민으로 취급했다. 일본은 앞서 1947년 5월 자국내 외국인을 등록하면서 재일한인을 외국인으로 일제히 등록시키는 등 재일한인들은 때로는 일본인으로, 때로는 외국인으로, 어떤 때는 일본인도 아니고 외국인도 아닌 애매한 취급을 받았다. 특히 1951년 9월8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대일평화조약)의 발효와 함께 일본이 주권을 회복함에 따라 이들 재일 한인의 지위를 법적으로 보장해야 할 문제가 강력히 대두됐다. 이에 따라 그 해 10월20일 열린 제1차 한일회담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재일한인의 대부분이 식민지 전쟁 시대 노동력 보급을 위해 강제로 징용.징병됐다가 일본에 잔류하게 된 특수한 역사적 배경을 이유로 이들에게 특수한 법적지위와 처우를 부여해 일본 영주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일본은 이들을 일반 외국인으로 취급, 다른 외국인과 마찬가지의 제한을 가하겠다고 맞섰다. 이어 1953년 4월과 10월 열린 2∼3차 회담에서는 법적지위 문제와 함께 일측이 제기한 강제퇴거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거론됐다. 일본은 주권국가로서 재일 한인에게도 출입국관리령을 적용, 강제송환할 수 있다면서 한국측이 이들을 인수해줄 것을 요구했고 우리측은 특수한 지위에 있는 재일 한일을 송환할 때는 한국과 협의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다시 충돌했다. 재일 한인의 법적 지위에 대한 논의는 그러나 3차 회담때의 `구보타 망언'으로 한일회담이 결렬된 것과 동시에 사실상 중단됐다가 1958년 4월15일 시작된 4차 회담에서 다시 협의되기 시작했다. 일본은 그러나 한일이 독립국가로서 국내문제 불간섭과 타국의 관할권 존중이 교섭의 전제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토의의 중점을 퇴거강제에 두고 20개 항목의 퇴거강제 사유를 논의할 것을 재차 제의했고 한국측은 재일 한인이 차지하는 지위의 특수성에 상응한 대우와 퇴거강제사유에서도 일본의 출입국관리령과는 별도의 협의가 필요하다고 주장, 팽팽히 맞섰다.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그 해 6월10일 한일회담 경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재일한인의 추방문제와 관련해 일본 정부가 정당한 범위내에서 그들에게 보상을 지불할 수만 있다면 한인 전부를 본국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며 일본이 이 같은 보상을 한국 정부가 아니라 당사자에게 직접 전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것을 외교팀에 지시한다. 4차회담이 진행 중이던 1959년 1월 후지야마 외상이 북송 추방원칙을 발표하면서 회담은 다시 결렬되고 일본 각의는 다음 달 13일 후지야마 외상의 북송추방 원칙을 통과시키기에 이르러 한일 양국은 다시 치열한 외교전에 들어간다. 한국은 일본측 북송 입장을 지지하는 듯한 국제적십자를 상대로 한 외교전도 병행하지만 그 해 12월14일 1차로 975명이 니가타에서 북송선을 탄 것을 시작으로 1961년 1월29일까지 54차례에 걸쳐 모두 1만3천729세대, 6만4천281명이 북송됐다. 1960년 10월 제5차 한일회담이 개최 이후 1964년 4월까지 진행된 6차 회담에 이르기까지 한일 양국은 재일 한인의 법적 지위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토의에 들어가 영주권 부여 문제와 관련해 종전(終前) 범주에 속하는 재일한인 자손에게 어느 범주까지 영주권을 부여할 것인 지, 그리고 퇴거강제 문제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양국은 그러나 1964년 4월 재개된 7차 한일회담에서도 영주권 부여 범위를 놓고 대립하다 이듬 해 3월에야 영주권 부여 범위, 퇴거 강제이유 등 중요 문제에 합의해, 그 해 6월22일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일본국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법적지위와 대우에 관한 협정'에 서명함으로써 14년에 걸친 지루한 힘겨루기를 마감했다. 협정은 1945년 8월15일 이전부터 신청시까지 계속해서 일본국에 거주하고 있는 자, 이들의 직계비속으로 1945년 8월16일 이후 본 협정의 효력발생일로부터 5년 이내 일본국에서 출생하고 그후 신청시까지 계속 일본국에 거주하고 있는 자 등에 한해 영주권을 신청할 경우 허가해 주기로 했다. 또 내란.외환.국교에 관한 죄로 금고 이상의 형에 처해진 자, 마약류 체취로 무기 또는 3년 이상 형 또는 금고에 처해진 자, 일본 법령 위반으로 무기 또는 7년을 초과하는 징역 또는 금고에 처해진 자 등을 제외하고는 강제퇴거를 당하지 않도록 규정했다. (서울=연합뉴스) 지일우 기자 ciw@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