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3 04:22
수정2006.04.09 17:31
서울 왕십리 일대 지도가 2007년 3월이면 송두리째 바뀐다.
3만3000평 역사주변 부지에 2만8800평 규모의 국내 최대 역세권 쇼핑센터가 완공되기때문.이 쇼핑센터(비트플렉스)에는
국내 최대 시설이 여러개 들어선다.
1만1000평짜리 이마트,1만평 규모의 웰빙존,2km에 달하는 걷고 싶은 거리,88m짜리 암벽오르기 탑 등….
비트플렉스는 롯데백화점·에비뉴엘(명품관)·영플라자 등 세 건물을 합친 소공동 롯데타운(2만5000여평)보다도 3800평 더 크다.
건축비만약 2000억원이 투입되는 이 초대형 프로젝트는 조준래 비트플렉스 사장(52) 한 사람의 집념으로 성사된것이나 다름없다.
조 사장은 15년간 신세계백화점에서 근무했다. 주로 관청 인허가와 총무 일로 일관했다.
점포개발과 같은 디벨로퍼 업무에는 문외한이었다.
그랬던 그가 나이 마흔을 넘기면서 인생을 전환한다.
부동산 디벨로퍼가 되겠다는 것.
백화점 관리의 핵심인 총무부장이 사표를 내자 당시의 유한섭 대표이사는 충격을 받았다.
"보직이 마음에 안드나."(유 대표) "제 꿈을 실현하기 위해섭니다.
선진국을 돌아볼 때마다 새로운 쇼핑시설에 대해 제대로 공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늘 해왔었습니다."(조 부장)
그 시절 직장동료였던 정병권 신세계 홍보팀장은 "장래가 촉망됐었는데 모두 아쉬워했다"고 회고했다.
94년부터 97년까지 미국 버클리대학과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부동산학을 전공하면서 현지의 유통시설은 빠짐없이 둘러보고 현장공부를 했다.
이 때 쌓은 지식이 훗날 왕십리 민자역사 청사진을 펼치는데 아이디어 양식이 된 것은 물론이다.
귀국 후 부동산개발 컨설팅회사인 델코컨설팅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조씨는 디벨로퍼로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조씨는 철도청의 용산,신촌,성북,천안,노량진 민자역사 개발계획에 빠짐없이 참여했다.
이 때 철도청으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은 것이 나중에 초대형 프로젝트 '왕십리 역사 사업권'을 따내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왕십리 민자역사 사업 주관권은 원래 삼미유통이 지난 92년 철도청으로부터 획득했었다.
그러나 삼미유통이 94년 부도를 맞고 사업권은 청구그룹으로 넘어갔다.
청구마저 97년 12월 부도를 내면서 왕십리 사업은 표류할 수밖에 없었다.
왕십리사업이 좌초된 사실을 알게 된 조씨는 '자금도 빽도 없지만 실력으로 도전해보자'고 마음먹고 사업권 인수에 나섰다.
당시 역사개발사업을 맡았던 철도청 관계자는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왕십리 개발사업을 조 사장 개인이 하겠다고 나서니 황당했었다"면서 "아무리 실력과 추진력이 뛰어난 조 사장이라고 해도 혼자 추진하기엔 역부족이라고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조씨는 주춤거리는 철도청을 줄기차게 설득했다. 그의 논리는 이랬다.
"롯데나 신세계같은 대기업이 왕십리역사 사업을 추진할 경우 공사를 계열 건설회사에 맡기게 마련이다. 이러면 공사마진을 챙길 수밖에 없다. 유치회사도 계열 유통업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당연히 경쟁사는 입주를 포기하게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진정한 복합쇼핑몰을 만들기 힘들다."
외환위기 직후여서 대기업 등에서 경쟁자가 전혀 나서지 않는 상황도 조씨에게 유리했다. 마침내 철도청은 99년 12월 조씨에게 사업권을 주기로 결정한다.
사업권을 확보한 조씨는 2000년 4월 고향(경남 함안) 후배인 비트컴퓨터 조현정 사장 등으로부터 자금을 유치, 자본금 100억원 규모의 개발회사 '비트플렉스'를 설립한다.
산업은행에서 프로젝트 파이낸싱 자금 450억원도 유치했다.
개인이 추진하는 쇼핑센터 사업이어서 고개를 갸우뚱하던 은행도 할인점 이마트,영화관 CGV,제일모직 등이 잇따라 입점을 결정하면서 마음을 바꿨다.
작년 4월 마침내 공사에 들어갔다.
"왕십리역사는 서울 부도심의 명소로 떠오를 게 확실합니다.
분당까지 이어지는 지하철이 건설중이고 강변북로와도 바로 통하는 등 사통팔달 교통 네트워크가 좋습니다. 게다가 청계천 복원과 왕십리 뉴타운, 뚝섬 숲 개발 등 주변에 개발호재들이 널려 있어 시너지도 폭발적입니다."
강창동 유통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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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벨로퍼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
우선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란 고사성어를 가슴에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쉽게 풀이하면 이익을 공평하게 나누라는 뜻입니다.
이를 디벨로퍼에게 맞는 말로 바꾸면 이렇습니다.
"쇼핑시설들을 분양해서 목돈을 거머쥐는데 연연하지 말고 10년이 지나도 소비자와 입점업체들이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장기안목을 갖고 개발사업에 임해야 한다."
요즘 우후죽순 들어서는 복합 쇼핑몰들이 상권형성 등에 실패하는 이유도 바로 성급함 때문입니다.
이를 막기 위해 비트플렉스는 입점업체와 계약할 때 전매금지조항을 넣었습니다.
이 조항을 넣느라 본사는 당장의 분양이익을 덜 챙기는 불이익을 감수했습니다.
시행사나 일차 입점업체들이 이익을 남기고 팔아넘기는데 급급하게 되면 쇼핑몰은 성공하기 힘듭니다.
화이부동(和而不同)도 디벨로퍼가 명심할 만한 경구입니다.
'각자의 개성이 어우러진 조화'를 뜻합니다.
복합몰에 들어가는 시설들이 조화를 이루되 천편일률적인 구성을 해서는 안된다는 얘기입니다.
/조준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