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형 < 서울대 교수·공법학 > 25일 반환점을 앞두고 청와대 정책실이 발표한 평가에 따르면 참여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 못지않은 혁혁한 성과를 거둔 것 같다. 2004년 유엔 '전자정부 준비지수' 평가에서 5위를 차지한 전자정부 성과,주식시장의 활성화,신용불량자 문제의 안정적 처리,R&D 예산 비중 확대,기술직ㆍ이공계 신규채용 증가,일자리 창출 등 가시적 성과들이 즐비하다. 거기에 남북협력관계의 발전,정부와 관료 및 권력기관들의 탈권위주의화,정경유착 고리 해체와 반부패캠페인 실적 등 정치분야 성과들을 더하면 장밋빛이 한층 더 완연해진다. 그러나 언론사 등 몇몇 민간기관들이 실시한 여론조사는 이와는 정반대로 매우 실망스런 평가결과를 전한다.노무현 대통령의 전반기 국정운영에 대해 국민 10명 중 7명이 '잘못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10명중 9명은 경제정책이 잘못됐다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야당처럼 정치적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입장에서라면 정반대의 채색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이 실제로 느끼고 토로하는 불만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 여론조사의 의미는 결코 평가절하될 수 없다. 정부 당국자의 자평이 장밋빛을 띠는 건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이처럼 국민의 체감인식과 현격한 괴리를 보이는 건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왜 이런 갭이 생긴 것일까. 홍보부족 때문일까,아니면 사악한 보수언론과 오피니언 리더들의 여론오도 때문일까,그것도 아니라면 우리나라 국민의 고질적인 욕구불만 탓일까. 가장 근본적인 인식의 갭은 언론에서 지적하듯 경제성적표에 대한 평가에서 비롯된다. 정부측 인사들도 경기침체나 청년실업 문제 등 성적표가 좋지 않음을 시인하지만,어디까지나 단기 처방보다는 구조와 시스템을 바꾸는 걸 중시하다 보니 생긴 문제일 뿐이라고 변명한다. 단기적 지지도를 높이는데 급급하면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문제를 풀 수 없으므로 국민의 고통을 예의주시하되 지지도에 집착,단기 처방을 내놓지는 않겠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말인즉 올바르고 논리적으로도 정당하지만 그 뜻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성장보다 분배와 균형에 초점을 둔 경제정책을 펴오면서 서민, 중소기업 등 경제적 약자를 위한 정부라고 자임했지만,정작 경기침체로 고통을 받는 쪽도 그로 인해 가장 큰 불만을 가진 쪽도 바로 경제적 약자들이다. 정부 스스로 양극화 문제로 고민할 정도로 소득격차는 확대됐고,서민들의 삶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들은 정부가 진심으로 자신들을 위한, 구조와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경제정책을 펴온 것인지 묻는다. 단기적으론 어려워도 장차 경제구조와 시스템 개혁으로 자신들의 삶의 조건을 확실히 개선하겠으니 피와 땀으로 인내해 달라고 양해를 구한 적이 있는지 반문한다. 지지기반인 서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면 정치적 성공도 없고 정치성공 없이는 경제성공도 없을진대 과연 자신들로부터,단기적으로라도,지지를 받을 만한 성과를 낼 수는 없었는지 되묻는다. 헌법만큼 바꾸기 어려운 정책으로 부동산을 잡겠다며 '세제폭탄'이란 별명을 얻은 대책을 내놓았지만 서민들 삶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내수 경기를 회복시킬 수는 없었는지 힐문한다. 참여정부의 중간평가를 둘러싼 갭 분석은 문제가 홍보부족이나 언론과 여론지도층의 오도, 또는 국민의 불만에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해와 몰이해, 악의라는 장막을 걷어 내더라도 여전히 남는 건 참여정부가 공공연히 옹호하고자 했던 바로 그 경제 약자들의 삶의 조건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시정(市井)의 진실이다. 좀더 솔직해져야 한다. 약속을 지키려고 애썼지만 다른 부문에서의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경제문제에서는 아직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사실을 고해하고,남은 기간 열과 성을 다해 경기를 살리고 서민들의 삶을 돌보겠다는 진심어린 서약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