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起澤 < 중앙대 교수·경제학 > 한국 경제가 장기침체의 늪에 빠진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8일 한국CEO포럼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회원의 70%가 장기불황에 들어섰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거시경제지표를 살펴보아도 CEO들의 체감지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올 1분기 경제성장률(GDP증가율)은 2.7%로 작년 1분기 5.3%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신용불량자 문제로 경기가 최악이었던 재작년 1분기 성장률 3.7%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연간 경제성장률도 재작년 3.1%에서 작년에 4.8%로 반등하는가 싶더니 올해에는 다시 3%대로 주저앉을 전망이다. 세계 전체의 경제성장률은 재작년에 4.0%,작년에는 5.1%였고 올해는 4.3%로 예측된다. 따라서 우리 성장률은 3년 연속 세계성장률에도 못 미치고 있다. 60년대 중반 이후 30년간 일부 도시국가를 제외하고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률을 기록한 국가가 바로 한국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더욱 우려되는 것은 우리 경제의 장기 성장추세를 나타내 주는 잠재성장률이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잠재성장률은 2000년대 들어 5%대를 유지하다가 최근 4%대로 하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같이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민간기업의 투자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GDP 대비 설비투자 비중이 90년대 중반에는 13% 수준이었으나 작년에는 9.2%로 하락했다. 절대금액으로 보더라도 작년의 설비투자 총액은 74조원으로 1996년의 77조원보다도 적다. 투자가 이렇게 줄어드니 GDP 대비 자본스톡비율은 선진국보다 낮을 뿐 아니라 그 차이가 계속 확대되는 추세에 있다. 이에 따라 생산능력 증가율이 저하되고 성장잠재력이 하락해 선진국을 따라잡기는커녕 더욱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GDP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소비지출을 보면 과거 2년간은 절대금액이 감소했으나 올 1분기 들어서는 1.4% 증가율을 보였다. 그러나 그 구성을 보면 여전히 해외소비 증가율이 국내소비 증가율을 크게 앞서고 있다. 작년 한 해 120억달러에 달했던 해외소비가 올해에는 1분기에만 45억달러나 된다. 해외소비가 급격히 증가하는 이유는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소비는 고급화되는 데 반해 국내 서비스산업은 낙후돼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투자를 줄이고 가계는 해외로 나가 소비하는 것이 우리 경제의 현주소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국내 수요의 감소로 경기는 침체되고 고용은 줄어들어 소득은 감소하고 다시 소비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이러한 악순환의 덫에서 벗어나려면 기업투자가 활성화돼야 하고 국내 서비스산업이 한 단계 도약해 고급화된 서비스상품을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당장의 경기 활성화대책으로 재정지출 증대와 더불어 기금과 공기업 여유재원을 활용해 공공분양주택 도로건설 등에 대한 공공지출을 5조원 정도 늘리기로 했다. 야당에선 소득세와 법인세의 추가 감세를 주장하고 있다. 공공지출의 증대이든 감세정책이든 일회성으로 수요를 창출하는 데 그쳐선 안되고 지속적으로 민간투자를 유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CEO포럼의 지적과 같이 '정치논리 확산에 따른 경제여건의 불확실성'이 제거돼야 한다. 현 정부 들어 경제여건을 불확실하게 만든 사례는 무수히 많다. 대형 국책사업이 일부 시민단체의 반발로 지연되거나 불법적 노동쟁의행위도 노동자의 권익보호 차원에서 용납되기도 했었다. 소모적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논란이나 검증되지 않은 지역균형발전 전략도 시장의 불확실성을 증대시켰다. 투자활성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자의 재산권에 대한 믿음이다. 정부는 아무리 정치적 부담이 크더라도 엄격한 법 집행을 통해 기업의 합법적 투자활동은 철저히 보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