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잇단 `핵폭탄급' 발언으로 정국이 개헌론을 포함한 권력구조 개편 논란에 휩싸이면서 한나라당이 고심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연정 검토' 발언이 지난 4일 언론에 뒤늦게 보도된 뒤 5일에는 여소야대의 비정상적 정치상황 개선을 위한 `권력구조 개편 공론화 촉구' 발언이 이어진 데다 급기야 7일에는 `내각제 수준의 권력이양 용의가 있다'는 정국 전반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매머드급' 발언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의 발언이 나올 때마다 공식적으로는 경기 침체와 부동산 가격 급등, 유전의혹과 행담도 개발의혹 등 각종 `게이트'로 인한 민심 이반을 호도하기 위한 국면전환용 돌출발언'이나 `정국타개용 승부수'로 치부하며 `논의할 가치도 없다'는 냉담한 반응을 보여 왔다. 그러나 대통령 발언이 당장 정국에 미치고 있는 영향이 워낙 큰데다 정치담론식 이슈제기로 인해 파장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한나라당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한나라당 입장에서 본다면 노 대통령의 발언은 대부분 `말도 안되는 얘기'지만 어쨌든 대통령이 정국 이슈를 선점하면서 경제실정과 각종 게이트 문제, 윤광웅 국방장관의 해임건의안 제출을 촉발한 총기난사 사건 등 여권의 발목을 잡고 있던 문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희석되고 결국 한나라당이 대여공세와 관련, `무장해제'된 측면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대통령이 취임 이후 고비 고비마다 내놓은 국민투표를 통한 재신임 등의 `카드'에 대해 한나라당이 일관된 반대를 표명하면서 본의 아니게 `반대당'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뒤집어 쓸 수도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결국 지난 4.30 재.보선 압승과 이후 여당의 내분사태로 잠시 정국주도권을 잡았던 한나라당은 6월 임시국회 말미 윤 국방장관 해임건의안 부결로 `상처'를 입은데 이어 7월 하한정국에 들어서 대통령의 기습적 `이슈선점'에 제압당해 적어도 외견상 정국 주도권을 완전히 여권에 넘겨준 상황이다. 정국 주도는 고사하고 내각제 개헌 가능성 등을 암시하는 대통령의 발언이 당내 개헌론자들에게 미칠 후폭풍을 차단해야 하는 등 내부단속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수세적인' 상황으로까지 몰린 셈이다. 당의 한 중진급 의원은 8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대통령제가 너무 혼란스러우니까 내각제도 괜찮겠다 하는 생각을 가진 정치인이 있을 수 있지만 나라 사정이 어려울 때 책략으로 들고나오는 것을 받아들여선 안된다"면서 "그런 논란에 휩쓸려선 안되며 (대통령의 제의에) 참여하면 결국 한나라당은 분열된다"며 당 내부를 향해 경계의 목소리를 냈다. 이런 가운데 한나라당은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의 의미를 애써 무시하면서 경제문제에 매달리는 쪽으로 `갈길을 가겠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무대응이 상책이라는 대응기조를 정한 셈이다. 대통령 발언 직후 침묵으로 일관했던 박 대표가 최근 "딴 생각할 겨를이 없다. 일자리 등 민생정책, 경제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비판하고 나선 것은 정쟁에 관심을 두지 않고 민생 현안에 매달리는 모습을 국민에게 부각시킴으로써 빼앗긴 정국 주도권을 찾아오겠다는 전략을 내비친 것이다. 전여옥(田麗玉) 대변인도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우리는 작심하고 우리 길만 가야 된다"며 대통령과 여권의 의도에 말려들지 말고 독자적인 노선을 걸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유의주기자 ye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