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민 < 본사 주필 > 왜 이렇게 세상이 어수선한가. 수도이전 문제로 뜨겁게 달아오르더니 이제는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놓고 전국이 몸살을 앓게 생겼다. 부동산투기 열풍이 온나라로 번지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그 뿐인가. 경기는 여전히 썰렁한데 국제기름값은 배럴당 60달러를 넘어서 연일 사상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으니 이만저만 심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정부 반응은 신기하리만큼 느긋하고 무덤덤하다. 별것 아니라는 건지,아예 대응을 포기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그러는 사이 경제는 무기력증에 빠지고 서서히 침몰하는 양상이다. 성장률이 떨어져 일자리는 좀처럼 늘지 않고,버팀목 역할을 해오던 수출마저 증가율이 현저히 낮아지고 있다. 기업들은 채산성 악화 때문에 이익 내는 규모가 줄어들어 걱정이 태산이다. 이제 볼멘소리마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목이 쉬어 목소리가 잠겨버린 탓일까. 경제부총리는 이제 장기침체 우려를 얘기하지만 경제전문가들은 벌써 침체가 깊어졌다고 진단한다. 연구기관들이 경제전망을 발표할 때마다 성장률이 낮아지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우리 경제가 달성할 수 있는 성장잠재력이 3%대로 낮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주식시장은 종합지수 1000선 부근을 맴돌기만 하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경제가 총체적 무기력증에 빠진 양상이다. 정부가 제아무리 언제쯤부터 좋아질 것이라고 강변해도 아무도 믿지 않는 세상이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지 2년반,노무현 대통령의 임기가 절반을 지나가고 있다. 그렇지만 정책방향이나 권력핵심의 생각은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이념논쟁에 성장과 분배 논란이 가세되면서 처음부터 기득권층으로 낙인찍어 놓았던 기업인들의 기(氣)꺾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경제를 살리자고 '시장친화'를 얘기하면 개혁주의자들의 반발이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다. 정부와 여당,그리고 청와대까지 고장난 신호등처럼 아무때나 제각각으로 방향표시를 바꾼다. 뒤따르는 차들이 우왕좌왕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돈이 얼마가 들어가든,공기업의 효율성이 낮아지든 말든, 그저 겉으로라도 지역균형이 이뤄지기만 하면 공기업 지방이전의 당위성이 성립된다는 건가. 경제정책 하나만을 놓고 볼 일도 아니다. '우리끼리'에 동조하는 남북문제, 하향평준화의 결과만 가져온 교육정책, 법질서가 유린당하는 사회혼란의 방치,도를 넘어선 낙하산 인사 등이 결국 불안과 불신의 씨앗 아닌가. 정말 이대로 가서는 안된다. 말로만 경제살리기에 올인할 것이 아니라 정책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어떻게 하느냐의 방법은 이미 수많은 전문가들이 제시했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와 할 일들이 많지만 두 가지만 강조하고 싶다. 우선 기업규제를 과감히 풀어야 한다. 경기회복의 실마리는 기업들의 활발한 투자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기업들의 여유자금이 움직이지 않는 경기회복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전제다. 세계시장을 향해 뛰어가기도 바쁜 마당에 출자총액규제 따위는 또 무슨 '딴죽걸기'인가. '분배'를 앞세워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대기업을 억눌러서 과연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본질적인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정치인들과 정책당국자들이 돈 안들고도 가장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대책 가운데 으뜸이 규제철폐가 아닌가 싶다. 다른 하나는 경제정책의 사령탑을 확실히 해야 하는 문제다. 방향의 옳고 그름 이전에 경제부총리에게 주어진 권한까지 무력화시킬 정도인 청와대 주변이나 정치권의 불필요한 목소리는 과감히 차단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것이 경제 정책수립과 집행의 순리다. 청와대와 여당의 목소리가 너무 커 정책혼선을 야기한 사례를 들자면 어디 한둘에 그칠 것인가. 이제 더 이상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