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부동산 시장은 뜨거웠다. 그러나 그 열기를 식히기 위해 내놓은 숱한 정책들은 하나같이 처방전이 되지 못했고 급기야 `정책실패' 사례로 낙인찍혀 시중 여론은 물론 정부, 여당내에서조차 따가운 질책을 받아야 했다. 결국 청와대와 여당, 정부는 지난 17일 부동산정책 간담회를 갖고 기존의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고 시장 안정을 위한 중장기 과제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정책을 8월말까지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미 거슬러 흐르기 시작한 시장 흐름과 집값 급등에 속이 타들어간 국민들의 마음을 되돌리고 정책 신뢰성을 확보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 봇물이룬 부동산 안정대책 = 지난 2003년 10.29대책으로 잠잠하던 부동산 시장이 꿈틀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말이었다. 정부내의 재건축 완화 움직임과 판교발 개발호재가 맞물리면서 강남권과 분당을 중심으로 심상찮은 가격 상승 분위기가 감지됐다. `부동산 안정'을 최우선 정책 모토로 내세웠던 참여정부는 즉각 대응했다. 채권ㆍ분양가 병행입찰제를 통한 판교 분양가 억제, 재건축 안전진단 강화, 초고층 재건축 불허 등이 담긴 2.17대책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불과 한달뒤 대형 매물이 부족하리라는 예상이 나오면서 강남 중대형아파트는 다시 오름세로 돌아섰다. 분당과 용인에 수요가 몰리면서 한달새 1억원 이상이 치솟는 단지가 속출했고 이같은 상승세는 평촌, 수원 등으로 확산됐다. 정부의 대응도 전방위 압박으로 틀을 잡아 재건축 단지에 대한 경찰 수사, 국세청 세무조사 등 조치가 이어졌다. 5월 4일에는 1가구 2주택 양도세 실거래가 과세, 기반시설 부담금제 등이 발표됐다. 강남 재건축의 투기억제 차원에서는 절차상 합법성 여부를 조사, 4월과 5월 동시분양에 참가할 예정이었던 도곡 2차와 삼성동 차관아파트 분양이 보류되기도 했다. 5월 19일부터는 재건축 아파트의 개발이익 환수차원에서 임대아파트 의무공급제가 시행됐다. 토지시장에 대해서는 투기지역 조기지정, 토지거래허가구역 운영강화, 개발사업시 허가구역 지정 의무화, 토지 취득요건 강화 등 조치가 취해졌다. 지난 4월 건교부가 처음으로 전국 단독주택의 가격을 고시하고 공시지가를 시세의 91%선까지 상향조정하며 공정과세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했다. ◇ 드러나는 정책 허점 = 하지만 `투기억제'에 초점을 맞춰진 정부의 고강도 정책은 시장의 흐름과는 맞지 않았다. 400조원이 넘는 풍부한 유동자금과 낮은 금리, 소득상승에 따른 고급 주택 수요확대 등에 대한 근원적인 처방없는 `때려잡기식 정책'은 오히려 거래를 급감시키며 시장을 호가 위주의 매도자 우위로 바꿔논 것이다. 부동산 안정을 구호로 내세우면서 한편에서는 덜익은 각종 개발 프로젝트 발표로 전국을 투기장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정부 부동산 정책의 한계는 6월들어 극명하게 드러났다. 부처간에는 `네탓' 공방이 이어져 정책 효과를 스스로 반감시켰고 여당과의 의견 불일치는 오히려 시장 혼란을 야기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3기 신도시 건설과 관련한 찬반 논쟁, 택지분양 단계에서 나온 뒷북식 판교 개발계획 변경론, 분양원가 공개 등 최근의 몇가지 예만 보더라도 정책을 둘러싼 당내, 당정간 분열양상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를 가늠케 한다. 삼성경제연구소 박재룡 수석연구위원은 "정책에 엇박자가 너무 많다"며 "정책혼선을 줄이는게 급선무"라고 충고했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상무는 "중앙정부와 지자체, 여야간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어떤 대책이 나오더라도 투자심리를 잠재우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이 오락가락하는 속에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국민들의 비난 여론이 비등하자 청와대까지 나서 지난 17일 회의를 갖고 `부동산 정책 전면 재검토' 결정을 내리게 됐다. 하지만 21일 재경부 고위관계자와 원혜영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은 또다시 설익은 `판교공영개발론'을 들고나와 시장 혼란을 부추겼다. 정부와 여당이 아직도 갈피를 못잡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준 셈이다. ◇ 하반기 정책 과제 = 정부의 향후 부동산 정책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8월말 나올 종합대책을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20일 청와대 회의에서 "부동산 정책에 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정책이 채택되지 못한 것은 사회에 뿌리깊은 이해관계와 잘못된 관행때문"이라는 인식을 나타냈다. 이와함께 거래투명성 확보, 투기이익 철저 환수, 공공부문 역할 확대 등 3대 원칙을 천명했다. 정부 관계자도 "8월말 대책은 한두해 써먹을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가져갈 정책이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종합하면 실거래가 신고제 시행, 실거래가 공개, 보유세 강화, 종합부동산세 과세기준 인하,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강화, 주택담보대출 제한, 부동자금 유인책, 임대주택 건설 확대 등이 검토대상에 포함될 전망이다. 최근 불거진 공공택지 공영개발, 아파트 원가공개 등도 담길 가능성이 높지만 시장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그 밥에 그 나물일 것"이라며 시큰둥한 반응이다. LG경제연구원 김성식 연구위원은 "실수요자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가수요를 차단할 수 있는 정책의 틀이 유지되고 입법과정에서 정부의 의지가 퇴색되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김현아 박사는 "정부가 시장을 외면한 채 각종 대책만 쏟아놓는 것은 오히려 투기세력의 내성만 키울 뿐"이라며 "정부는 중장기적인 목표를 세워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선별적으로 이를 활용한 뒤 나머지는 시장의 흐름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유경수기자 yk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