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邦柱 < 현대산업개발 사장 > 나는 고 정세영 명예회장을 한 직장에서 36년간 모셨다. 이제 우리 곁을 떠나신 그분의 행적을 더듬어 보면서 성공한 기업가의 진면목을 다시 되돌아보고자 한다. 정 명예회장은 "비록 산 정상에는 서지 못해도 바른 길을 택하여 산에 오른다면 그 자체는 올바른 산행"이라며 정도경영을 실천한 분이다. 또 어렵고 힘든 결정을 할 때 최종 결심에는 명분과 의리를 앞세웠다. 32년간 분신처럼 키워온 현대자동차 경영권을 미련 없이 내놓은 것도 형님인 정주영 명예회장에 대한 의리 하나 때문이었다. 당시 그분은 계동사옥 8층 집무실 벽에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문구를 붙여놓고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기도 했다. 그분은 본인의 업적에 대해 결코 자만하지 않았다. 현대자동차를 떠난 뒤 걱정도 했지만 나중에는 경영 성과에 만족해 하며 "돌이켜 보니 자동차도 건설이나 중공업의 지원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거야. 내가 다 한 게 아니고 그룹의 도움도 많았다"며 겸손해했다. 한번은 우연찮게 현대자동차 퇴임 임원들이 상대적으로 경제 사정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서는 "내가 경영할 때 임원들에게 좀더 대우를 해줬어야 하는데…"라며 자괴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정 명예회장은 세상사에 대한 토론과 담소를 즐겼으며 일찍이 유학 시절 때와 현대자동차의 세계경영으로 체험한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의 믿음을 토대로 항상 사회와 국가에 대해 깊은 애정으로 걱정하는 경세가(經世家)였다. 의료보험제도가 시행되기 훨씬 전인 1970년대 초 이미 그분은 최소한 현대자동차 가족들만큼은 아플 때 병원에서 충분한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며 한국 최초로 사내 의료보험제도를 만들었다. 또 언젠가 결재받으러 들어가니 계산기를 옆에 놓고 쌀 1t당 국제 시세와 북한 동포들이 굶지 않으려면 얼마 정도의 지원이 필요한지를 열심히 계산하면서 북한의 식량난을 걱정하기도 했다. 정 명예회장은 깊이 있는 경영을 했다. 한번은 중역회의에서 협력업체의 국산화율이 얼마나 되는가를 물었는데 자재 담당 중역이 우물쭈물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분은 모회사의 국산화에만 신경쓰지 말고 협력회사의 국산화도 촉진시키는 계획을 적극 추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런 지시가 우리 자동차산업을 어떤 산업보다 외화가득률이 높은 산업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됐다고 생각한다. 정 명예회장은 세계 자동차 시장의 흐름을 꿰뚫어 보고 때로는 과단성 있는 경영을 주저하지 않았다. 큰 폭의 대미 적자 해결을 위해 모두 고심하던 98년 말 무렵 그분은 출근과 동시에 본부장 회의를 소집해서 '10년 무상보증수리'라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내가 곁에서 오랫동안 지켜본 정세영 명예회장은 이윤만 추구하는 단순한 사업가(Business man)가 아니라 신념과 철학을 겸비한 기업가(Entrepreneur)였으며 경세가(經世家)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