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영'의 깃발 아래 전세계에 걸쳐 500여개의 현지 네트워크를 구축, 한때 재계 서열 2위까지 올라갔던 대우그룹. 그러나 99년 대규모 유동성 위기에 따른 `대우사태'로 `공중분해'되면서 계열사 들은 워크아웃이나 계열분리 등을 통해 각자 외로운 `홀로서기'에 나서야 했다. 그룹이 해체된 후 6년이 지난 지금, 한때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몰리며 `쓰라린 상처'를 안고 `와신상담'했던 대우그룹의 옛 계열사들은 하나둘씩 재기에 성공, 화 려한 부활의 날갯짓을 하고 있다. 다만 대우인천자동차(옛 대우차 부평공장)의 GM 인수문제와 대우차 해외법인 매각, 일부 계열사들의 워크아웃 졸업 등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 세계경영 `깃발'..화려했던 지난날 지난 67년 김우중 전 회장의 대우실업 설립으로 `태동'한 대우그룹은 82년 ㈜대우로 사명을 변경하고 그룹 회장제를 도입, 본격적으로 그룹의 모습을 갖췄다. 지난 88년 동베를린에 국내 최초의 동구권 지사를 세웠던 대우그룹은 93년 3월22일 `세계 경영'을 선언, 과거 사회주의권 국가였던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우즈베키스탄 등지에서 자동차공장을 인수하는 등 본격적인 영토 확장에 나섰다. 93년말 185곳에 불과했던 해외 네트워크는 98년말에는 모두 589곳으로 늘어나 그야말로 세계 곳곳에 대우가 흔적을 남기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고 95년에는 첫 남북한 합작투자회사인 민족사업총회사를 북한 남포에 설립했다. 98년에는 쌍용차를 인수, 자동차 부문의 사업 확대를 꿈꿨다. 98년 연말 대우는 계열사 41개, 국내 종업원 10만5천명, 해외사업장 외국인 종 업원 21만9천명, 해외법인 396개사의 공룡재벌로 성장했으며 자산기준으로 삼성, LG 를 제치고 현대에 이어 재계 2위로 올라섰다. 대우그룹은 2000년께 총 650곳의 해외사업기지를 구축하고 해외현지 매출 57조 원을 포함, 매출액 138조원을 달성하겠다는 야심찬 중.장기 비전도 수립해 놨었다. ◆대우그룹의 몰락과 해체 그러나 대우그룹의 이런 외형적 성장세속에서도 그룹내실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대우에는 확실히 내세울 수 있는 1등 제품이 없었고 첨단신제품의 개발 및 생산으로 국내외 시장에서 이윤의 대폭발을 거둔 사례도 없어 급격히 커진 외형을 떠받치기에는 내부구조가 취약하다는 게 시장의 우려였다. 아울러 주로 외부 차입에 의존해 설립했던 해외사업장중 제대로 이익을 내는 곳이 별로 없었다는 것도 이런 우려를 뒷받침했다. `외화내빈', 이것이 한국경제의 압축성장의 영욕을 함께 한 뒤 그룹해체 암운의 `서막'이 서서히 드리워지기 시작한 대우그룹의 현주소였다. `대우호'(號)의 좌초는 98년부터 감지됐다. 110억여 달러에 달하는 대우그룹의 해외투자는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엄청난 부담으로 `부메랑'이 돼 돌아왔지만 대우그룹은 `세계경영'을 포기하지 않고 국.내외 사업장들의 운영자금 조달을 위해 차입금을 계속 늘려갔으며 결국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대우그룹은 98년 12월 8일 41개 계열사를 10개사로 감축하는 구조조정 세부계획, 99년 1월21일 ㈜대우의 수영만 부지 매각 등의 재무구조 개선 계획, 4월19일 대우중공업 조선부문 매각, 김우중 회장 보유주식 매각대금 3천억원 출연 등의 강도높은 구조조정안을 잇따라 발표, 위기 탈출을 모색했지만 시장의 신뢰는 회복불능 상태였다. 삼성과 진행했던 삼성자동차 인수 빅딜 협상도 6월말 결국 무산됐다. 6월말 대우 사장단 전원의 사표제출에 이어 7월19일 대우그룹은 10조1천억원에 이르는 김회장의 전재산 담보라는 극약처방을 제시했으며 곧이어 채권단이 대우에 신규자금 4조원 지원을 결의, 대우사태는 `찻잔 속 태풍'으로 그치는 듯 했다. 그러나 정부가 직접 나서 대우사태 종합대책을 내놓은데 이어 채권단이 8월26일 12개 주력 계열사에 대한 7억 달러 지원과 함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전격 단행 방침을 발표, 대우그룹은 그룹해체라는 운명의 순간을 맞게 됐다. 이미 25곳으로 줄어든 전체 계열사 가운데 ㈜대우, 대우통신, 대우중공업, 대우 자동차, 대우자동차판매, 대우전자, 대우전자부품, 쌍용자동차, 대우캐피탈, 경남기 업, 오리온전기, 다이너스클럽 코리아 등 12곳이 워크아웃 대상에 포함됐다. 대우증권 등 나머지 13개 계열사는 독자적 회생의 운명에 처하게 됐다. 같은 해 9월6일 ㈜대우, 대우자동차를 제외한 10개사가 은행관리에 돌입, 그룹 회장으로서의 김우중 회장의 `파워'는 유명무실해지고 워크아웃에서 제외된 곳들은 계 열분리를 통해 속속 떨어져나가는 등 그룹 `공중분해'의 긴박한 나날들이 이어졌다. 99년 11월 김 회장의 사표가 정식 수리되고 남대문 대우본사 집무실도 폐쇄돼 김 회장은 대우와는 완전히 인연을 끊게 됐고 연말 대우 구조조조정본부의 해체와 2000 년 초 `대우계열 구조조정추진협의회'가 발족하기에 이르렀다. ◆대우 계열사들의 오늘, '힘찬 부활' 그룹이 산산조각 난 뒤 뿔뿔이 흩어졌 던 계열사들은 고통의 나날들을 보내야 했지만 대부분 재기에 성공, `눈부신 성장' 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룹 몰락 후 매각 과정에서 가장 극심한 진통을 겪었던 것은 대우차. 2000년 6월말 포드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으나 그해 9월 포드가 최종 인수 제안서 제출을 포기, 11월 대우차는 최종 부도처리됐고 법정관리에 들어갔으며 우여곡절 끝에 GM이 인수, 2002년 10월17일 `GM대우차'로 새롭게 태어났다. 이 과정에서 대우차는 GM대우차, 대우인천차(옛 대우차 부평공장), 부산 대우버 스, 군산 대우상용차, 잔존법인인 대우차로 분할됐으며 부산 대우버스는 영안모자에, 군산 상용차는 인도 타타모터스에 각각 매각됐다. 대우차 잔존법인의 경우 GM이 인수하지 않은 해외 생산법인 14곳과 판매법인 20곳의 정리 작업이 추진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법인, 중국 옌타이 엔진공장은 이미 팔렸고 폴란드공장과 인도법인 등 일부 법인들의 매각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대우인천차는 6개월 연속 2교대 가동 등 4개 조건 만족시 GM이 인수할 예정이다. GM대우는 2002년 국내외 자동차 판매대수가 37만7천237대에 그쳤으나 수출 급신장에 힘입어 지난해 90만84대로 급증했으며 올해 100만대 이상 목표를 세웠다. 과거 대우차 시절의 정리해고자(1천725명)도 이미 945명이 원대복귀했다. 대우조선, 대우종합기계, 대우건설, 대우인터내셔널은 최단기간내에 옛 영광을 되찾은 `4인방'으로 꼽힌다. 2000년 대우종합기계와 함께 대우중공업에서 갈라져 나온 대우조선은 세계 LNG 선 시장을 석권하는 등 영업 호조와 자구 노력에 힘입어 2002년 8월 대우 계열사 가운데 가장 먼저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대우종합기계도 2001년 11월 워크아웃에서 조기 졸업했으며 올 초 두산중공업에 인수돼 사명을 `두산인프라코어'로 변경, 두산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거듭났다. 2000년 ㈜대우의 분할로 클린 컴퍼니로 재탄생한 대우건설과 대우인터내셔널도 2003년말 나란히 워크아웃에서 졸업했으며 놀라운 실적 개선 행진을 구가했다. 잔존법인인 대우중공업과 ㈜대우는 청산 절차를 밟고 있다. 앞서 대우자동차판매도 2002년 11월 워크아웃 `꼬리표'를 떼 현재 옛 대우 주력 계열사 가운데는 대우일렉트로닉스(옛 대우전자)만 워크아웃 상태로 남아 있다. 대우일렉트로닉스는 반도체, 무선중계기, 신사옥, 방산 등 비주력 사업을 매각, 2002년 굿 컴퍼니와 배드 컴퍼니로 기업을 분할한 뒤 우량사업 부문만 선별 인수한 대우일렉트로닉스로 거듭났다. 당초 대우차와 통합되는 시나리오에서 3자 매각쪽으로 선회한 쌍용차의 경우 2 000년 4월 대우그룹에서 완전히 계열분리됐으며 중국 란싱그룹에 넘어가는 듯했으나 진통 끝에 작년 10월말 중국 최대 자동차 그룹인 상하이차(SAIC)에 인수됐다. 대우증권은 현재 산업은행이 최대주주로 있고 다이너스 코리아는 현대차에 인수돼 현대카드로 탈바꿈했으며 오리온전기는 지난 4월 미국 매틀린 패터슨사에 인수됐다. 대우통신은 98년 워크아웃에 돌입, 구조조정을 통해 지난 2002년 5개 주요 사업 부문들이 분할돼 매각됐거나 매각을 추진중이다. 그러나 세계 각지에 산재해 있는 대우차 해외법인들의 처리문제가 순탄치만은 않은데다 워크아웃이나 매각작업이 완료되지 않은 곳들도 있어 과제로 남아 있다. 재계 관계자는 "대우 계열사들의 회생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 등 자구노력과 임 직원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기업 구조조정의 가장 모범적 사례로 꼽힌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송수경 기자